8살 나의 일기
1997년 7월 28일 월요일
일어난 시각: 5시 30분
잠자는 시각: 9시
아빠의 휴가로 몽산포 해수욕장에 갔다.
해수욕장에 간 첫날 우린 '산림 전시관'에 갔다.
할머니께서 옛날에 있었던 나무로 만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시면서 즐거워하셨다.
어른이 된 나의 소회
여기서 나오는 할머니는 아빠의 할머니, 즉 내게는 증조할머니시다.
할머니는 1910년대생으로 당시에도 아마 80대셨을 것이다.
평소에는 본인의 외동아들인 친할아버지댁에 사셨던 증조할머니는 가끔씩 손자의 집, 즉 우리집에 오셔서 몇 달간 지내고 당시 병원에 있어야 했던 엄마를 대신해 나를 돌봐주셨다.
그래서 나는 증조할머니와 꽤 가까운 사이였다. 같이 살고 함께 여행도 가는 가족이었으니까.
할머니에게도 내가 다른 사촌들보다 더 예쁜 증손녀였으리라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언제나 심심해보이셨다.
물론 집안 구석구석 걸레질도 꼼꼼히 하시고, 밥 안 먹는 손녀를 위해 밥에 물을 말아 김에 싸먹이고
열심히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80대 할머니가 겪었을 외로움은
어른들의 사정을 모르는 내가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짙었던 것 같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나는 내가 당시 좋아하던 전래동화 시리즈 책을 가져와 읽어드렸다.
한글을 읽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누워서 증손녀가 들려주는 전래동화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들으셨다.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이구 호래이가?"
증조할머니가 즐거워하셨던 모습은 내 머릿속에는 전래동화를 읽어드렸던 그 순간뿐이었는데,
이렇게 일기 속에도 새로운 모습이 남아있다니 새롭고 기쁘다.
일제강점기도, 광복도, 한국 전쟁도, 급변하는 사회 발전도, 혁명도 모두 겪으셨던 증조할머니께서
한창 아이 키우며 살림하실 때 쓰셨던 물건들을 '산림 전시관'이라는 박물관에서 오랜만에 보시니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증조할머니께 여쭤봤어야 할 것들이 더 많은데,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 많아 아쉽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할머니는 어떻게 결혼했는지,
남편이 스무살에 죽고 어떻게 사셨는지,
중간중간 힘이 들 때 어떻게 버티셨는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기쁠 땐 언제셨는지,
무엇이 가장 위로가 되셨는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할머니는 한글도 못 읽고 쓰는 말도 옛날 말이라 소통이 잘 안 될 때도 있었지만
분명 할머니로서 손녀에게 가르쳐주고픈 것들이 많으셨으리라.
90년대생 증손녀는 10년대생 증조할머니가 아직도 보고싶고 궁금하다.
그래도 할머니의 모습을 일기에 남겨준 내가 참 고맙다.
글모 선생님의 코멘트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왔구나!
할머니께 전시관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