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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모 Jun 03. 2024

친구네 집에서 놀기

8살 나의 일기

1997년 8월 26일 화요일

날씨: 해 쨍쨍

일어난 시각: 7시 30분

잠자는 시각: 9시


전에 살던 삼호 아파트엔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있다. 4살 때 부터 친구 였던 그 친구는 이름이 '정아'라고 한다.

오랜만에 정아네 집에서 '코끼리 바위'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놀았다.

마지막으로 정아랑 정아동생 준모랑 물고기놀이를 하면서 집에 갔다



어른이 된 나의 소회

정아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친구이다. 

4살 가량부터 몬테소리 스쿨에 함께 다니며 엄마끼리 친해지고 이후 다른 유치원으로 같이 옮겨가면서 같은 반도 하고 자주 어울렸다. 이 일기를 쓸 무렵 이사가게 되어서 자주 보진 못했겠지만 엄마들끼리의 친분으로 가끔 이렇게 만나서 놀았던 모양이다. 


그때 당시엔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을까? 

지금의 나는 상대와 몇 마디 나눠보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나와 비슷한지, 같이 있으면 편안한지, 재미있는지 생각하고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쌓이는 친분으로 누군가를 비로소 '친구'라 부를 수 있게 된다. 4살의 나와 정아는 어떤 느낌에서 서로를 '제일 친한 친구'라 부를 수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엄마들끼리 친했으니 그저 '자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제일 친한 친구라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제일 아끼는 바비인형을 정아에게 양보했을 때 정아의 마음이 활짝 열렸을지도 모르지. 같이 놀다 다툼이 생겨 엉엉 울 정도로 싸우고 나선 도리어 더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함께 놀며 미끄럼 타기 딱 좋은 바위를 발견하고선 둘만의 암호로 '코끼리 바위'라고 별명을 붙인 이후부터 단짝이 되었을지도. 

나의 최초의 사회성은 아마 이렇게 싹을 틔웠을 것이다. 고맙고 사랑스런 어린 친구 덕분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친구 내지는 동료를 만들기 마련이지만 유독 나에게 친구는 학창시절 내내, 그리고 20대까지도 참 중요한 의미였다. 한창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춘기 시절, 친구는 내 존재 의미와 가치를 규정지어주는 존재였다. 외부로부터 지지받는다 느끼고 어딘가 소속되어있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은 어린시절의 결핍으로부터 생겨난 불안감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워주었다. 진정한 친구, 영원한 친구로부터 오는 안정감. 그것은 늘 내가 갈망하고 목말라하던 것이라서 난 어딜 가서든 의지할 만한 친구를 찾았고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남자친구에게 하듯 집착하기도 해서 도리어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결혼이 계기였는지 조금 더 나이먹음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인지 모르지만 친구를 향한 갈망은 이전에 비해 많이 사그라들었다. 늘 외부를 향하던 '친구가 필요해!'라는 시선은 자연스레 나의 내부로 향하게 되었고 이전엔 몰랐던 사실들을 최근 몇 년간 많이 발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좋아한다는 것. 사람들로 하여금 친해지고 싶게 하는 면모가 내겐 생각보다 꽤 많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너무 가까운 관계를 생각보다 좀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 생각보다 많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친해지고 있는지 아닌지 집착하는 데서 떠나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니 알게 된 사실들이다.


하지만 친구에 목매고 관계에 집착하던 예전의 내가 싫지만은 않다. 그 덕분에 나는 사람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웬만하면 편견이나 선입견 갖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도덕성의 근간인 공감능력을 (억지로라도)키울 수 있었다. 안쓰러운 옛날이 있기에 그나마 성장한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에 어린 시절 최초의 친구가 있었다. 

이사로 인해 멀어졌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우정이란 변함 없이 예전 그대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준 정아 덕분에 지금까지도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을 지킬 수 있다. 정아의 어린 동생 준모와도 같이 어울려 물고기놀이를 하며 사이좋게 집에 돌아간 기억 덕분에 나는 친구의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챙길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나의 최초의 친구인 그녀 역시 어디선가 분명히 나와 나눈 우정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체와 연대의식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행복을 빌지 않아도 이미 행복하리라 믿는다. 



글모 선생님의 코멘트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 기분이 좋았겠다^^

그런데 물고기 놀이는 무슨 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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