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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모 May 29. 2024

책 읽기

8살 나의 일기

1997년 8월 23일 토요일

날씨: 해 쨍쨍

일어난 시각: 7시 30분

잠자는 시각: 9시 30분


언니들이랑 놀이터에 책을 읽으려고 한 놀이기구 올라가서 책을 읽었다.

나는 처음에 올라가기가 무서웠지만 언니가 올라와 보라고 해서 올라갔다. 정말 그 놀이기구는 편안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중에서 딱 알맞은 곳 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른이 된 나의 소회

야외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걸까?!

집에서만 읽던 제일 좋아하는 책을 놀이터로 가지고 나와 높은 놀이기구(아마도 정글짐?)에서 읽으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늦여름이긴 해도 쨍쨍 내리쬐는 햇살 아래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읽는 책은 다 아는 내용이어도 새롭게 느껴졌으리라.


지금도 나는 밖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놀이기구 대신 루프탑 카페로 올라가긴 하지만, 바깥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며 잔잔한 시집을 읽거나 마음 깊이를 돌아보게 하는 심리학 책을 읽고 있자면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음악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하면서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근처 공원에 가 돗자리를 깔고 하던 '뒹굴뒹굴 책읽기' 시간이었다. 짧아진 봄가을 중 언젠가 날씨가 정말 좋은 때를 선택해 "얘들아, 오늘 날씨도 좋은데 우리 뒹굴뒹굴 책읽기 할까?" 하면 교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뒤집어진다. 즉흥적으로 제안할수록 더 좋다. 친구들과 돗자리 깔고 앉아 속닥속닥 웃기도 하던 아이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 안으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간다. 그리고 난 그 모습을, 그 순간을 정말 사랑했다. 삶의 진실한 경험 중 하나를 제자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정말 너무 행복했다. 공원까지 오며가며 재잘대는 아이들과 웃고 떠들 있는 덤이다. 

아, 그립다.


8살 어릴적 동네 언니들과 놀이터 놀이기구 위에 올라가 책을 읽었던 첫 경험.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경험이 나의 평생의 취향을 만들고, 사랑스런 제자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인생이란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따뜻하고 소중한 첫 경험들 덕분에 일궈나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모 선생님의 코멘트

놀이터에서도 책을 읽다니 기특하네!

엉덩이 아프진 않았니? ㅎㅎ 다음에도 또 도전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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