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나의 일기
1997년 8월 20일 수요일
날씨: 구름 낀 하늘
일어난 시각: 7시
잠자는 시각: 9시
놀이터에서 새롬이언니랑 승은이언니랑 민희언니랑 놀고 있는데 한쪽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쪼금씩 오기 시작 했다. 그러다가 검은구름이 조금 더 밀려 오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엄마가 우산을 갖다 주셨지만 우리는 흠뻑 젖어있었다.
어른이 된 나의 소회
특이하게도 나는 비 맞는 것을 그리 싫어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비가 올지 안 올지 잘 모르겠을 땐 무조건 우산을 안 챙긴다. 비 맞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 데 반해 우산은 너무 무겁고 귀찮달까.
그러한 나의 성향을 감안해 이 날의 사건을 상상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엄마 친구 딸인 새롬이 언니네 일산으로 놀러갔을 것이다. 거기서 언니들과 놀이터에서 아마 얼음땡 내지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서 놀았겠지. 더운 여름이었으니 머리를 엄마가 바싹 묶어주고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겠지만 그럼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뛰놀던 중 빗방울이 몇 번 떨어지자 누군가 소리쳤을 것이다. '어? 비온다!'
그제사 하늘을 올려다 본 나는 하늘 저쪽에서 먹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비가 쏟아질지도 모르겠지만 노는 것을 멈출 순 없다. 제일 학년이 높은 언니가 얘기했겠지. '좀만 더 놀다가 비 많이 오면 집에 가자!'
그래! 우리는 계속해서 놀이터 곳곳을 뛰어다니며 술래를 피해 얼음땡을 한다. 비가 점점 많이 오지만, 서로가 쫄딱 젖어가는 게 보이지만 그게 더 재밌다.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때쯤에야 우리는 등나무 정자로 몸을 피한다. 와 난 여기까지 젖었어! 이거 봐 나 머리 감은 거 같지 않냐, 우리는 오히려 낄낄거리며 정자에서 다른 놀이를 시작한다. 쎄쎄쎄, 끝말잇기, 땅따먹기 등등 놀거리는 많으니까.
엄마들은 딸들이 걱정되어 우산을 갖고 놀이터에 찾아온다. 쫄딱 젖은 어린이들을 발견하고 화도 나고 웃음도 난다.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나는 새롬이 언니의 옷을 빌려입고 엄마와 집으로 돌아간다. 안녕! 또 놀자!
이렇게 비 맞은 기억은 즐겁고 특별한 추억이 된다.
어쩌면 내가 비 맞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특별한 추억이 무의식 중에 자리 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오는 날 가끔 나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런 제안을 하곤 한다.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 10초동안 비 맞고 오기 할래?" 이 철없는 제안에 장난스런 눈빛을 보내며 그럴까? 하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아마 어릴 적 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일기에 등장하는 언니들도 아마 나와 같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연락조차, 안부조차 알 수 없지만 어릴적 즐거운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글모 선생님의 코멘트
놀다가 비도 맞고 개구쟁이네^^
감기 걸리진 않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