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나의 일기
1997년 8월 15일 금요일
날씨: 해 쨍쨍
일어난 시각: 7시
잠자는 시각: 9시
월트 디즈니 아이스쇼 '알라딘'을 보러 갔다.
엄마랑 아빠랑 올림픽공원 북2문 으로 들어가서 제2체육관에서 공연했다.
내가 상상한것보다도 아주재미있고 알라딘과자스민은 연기를 아주 잘했다는 것을 느꼈다.
'알라딘' 같은 공연이 오면 또 보고 싶다.
어른이 된 나의 소회
궁금해서 찾아보니 1997년 8월 13일 동아일보에 정말 이 공연에 대한 기사가 났었다.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했다는 내 기록과 일치한다.
오... 역사의 산증인.. 나 자신..
어렴풋이 이 날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게 있긴 하다.
자스민 역할을 하던 배우가 빙판 위에서 멋지게 공연을 하고 조명이 꺼지자 퇴장했는데
내가 앉아있던 좌석 바로 옆 통로로 스쳐 지나가 가까이서 그 배우의 얼굴을 봤던 기억이다.
아마 인생 최초로 이런 류의 공연을 봐서 안 그래도 흥분되고 신기한데
무대 위에 있던, 멋지고 나와는 다른 것 같은 배우가 내 옆에 가까이 오다니 놀랐던 것 같다.
'연예인 실물로 봐서 압도되는 감정'을 처음으로 경험한 순간이다.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주변에 배우지망생들도 많이 보아왔고 연예인도 실물로 몇 번 보다보니 감흥이 없어서
그 배우가 지나가든 말든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어릴 땐 첫경험이 많다. 그래서 더 서툴지만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날은 8월 15일 광복절, 공휴일이었다.
아빠에게는 꿀같은 휴일. 엄마에게도 무더위에 지쳐 집에 그냥 있을 수도 있었던 날.
엄마와 아빠는 나와 함께 내한 아이스쇼를 보러가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딸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물했다.
사소한 것일 수 있는데 왜인지 이 선택이 어른이 된 지금 굉장히 마음에 와닿는다.
아이를 위해서 휴일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공연을 다함께 보러 가는 부모의 마음을 난 다 모르지만,
가는 길에 차가 막힌다며 엄마아빠가 투덜대다 싸웠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신보다는 나를 위한 작은 선택들이 하나둘 쌓여 내가 무사히 자라났다는 것이 더 감사할 따름이다.
엄마의 그림은 이쯤 되면 취미생활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대놓고 어른이 그린 그림이다.
스케이트 날을 그리려고 글씨 쓰는 칸까지 침범한 엄마와
그 침범한 공간을 피하려고 납작하게 글씨를 쓴 내가 너무 귀엽다.
올림픽공원 북2문으로 들어가 제2체육관에서 공연한 건 어떻게 저렇게 세세히 기록해놨는지.
엄마가 조선왕조실록이냐며 웃으셨다.
알라딘 공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일기에 기록하던 8살짜리는
모든 경험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블로그에 기록하는 블로거로 무럭무럭 자랐다.
글모 선생님의 코멘트
와 멋진 공연을 봤네! 재미있었겠다^^
비슷한 공연이 많을 테니 앞으로도 재미있게 보고 일기에 남겨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