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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03. 2023

춘기형이 돌아왔다

도드라지는 신체의 변화.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 갇혀있는 느낌의 권태.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 초조함.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갈망. 이거 뭐야, 고등학교 때 알고 지냈던 사춘기가 다시 온 거 맞잖아. 너무 똑같잖아.


인생이라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던 어느 날, 저 끝에 보이는 주황색 삼각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돌아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가 반환점이다. 삼각콘을 돌고 나면 이제 정해진 길은 따로 없다. 제각각 자기 마음대로 동선을 선택한다. 준비된 차량에 몸을 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들이 미리 펴놓은 돗자리 위에 앉는 사람도 있다. 쉬지 않고 왔던 길로 계속 달리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도 있다. 삼각콘 옆에 표지판을 보니 ‘40대’라고 적혀있다. 나도 어느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일단 도로 주변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자 이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잠시 생각한다.


내 옆에 누군가 앉는다. 춘기형이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성은 ‘사’씨 이름은 ‘춘기’. 반가워 춘기형 또 만났네. 내가 15살쯤이었나, 우리 그때 한번 만났었잖아. 반올림하면 거의 30년 만이네. 형을 까먹고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나니까 옛 생각도 나고 반갑네. 우리 그때 한동안 같이 다녔잖아. 침대에 얼굴을 박고 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같이 듣곤 했었지. 그때 참 학교가 답답하고 일상이 모두 권태로웠는데, 그래서인지 이성과 영화와 음악 같은 곳으로 관심을 돌리곤 했었잖아.


그런데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스스로 나를 알아가는 시도였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두는 대상에 나를 투영해서 하나씩 나라는 퍼즐을 완성하는 가는 거지. 예를 들면 내가 그때 좋아했던 여자 가수가 있었잖아. 사진을 모으고 심지어 가방에도 사진을 붙이고 다녔었지. 그때 나 팬레터도 썼었어. 그런 걸 하면서 내 안에 올라오는 낯선 감정들을 읽고 있었던 거야. 아, 이게 설레는 감정이구나. 그리움은 이런 로직을 가졌구나. 어라, 내가 지금 화내고 있고 이런 게 질투라는 것이구나. 그렇게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의 패턴을 가지게 되는 게, 아마 내가 그 당시 형을 만난 이유가 되겠지. 그리고 그 진한 감정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성인이 된 내가 있는 곳까지 물결을 만들어서 전달이 되더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연결되는 기분을 느꼈어. 그렇다면 말이야 춘기형. 뭐가 달라진 걸까. 도대체 내가 뭘 얼마나 더 성장을 한 걸까. 아니면 그저 본질은 달라진 거 없이 단지 사회적으로 메겨지는 나이나 그에 따라 변하는 주변의 환경만 매년 갱신되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그때 형을 만났던 날과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닐까.


아이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 혼자 자꾸 이상한 소릴 하네. 계속 달리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니까 별생각이 다 나나보다.


그나저나 형, 왜 또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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