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기다리는 작품이나 콘텐츠가 있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예전 일인데 봉준호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준비 중이고 프랑스 만화가 원작 ‘설국열차’라는 말을 들었다. 오 재밌겠다 꼭 봐야지 하고는 몇 년 뒤 영화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서 봤다.
그런 기다림은 두근두근하면서 설렌다. 그때 삶이, 내 일상이 기름 발린 것처럼 반들반들해지는 기분이 든다.
기다리는 가수의 루틴으로 치면 서태지와 아이들 만한 게 있을까. 서태지는 진작에 1집부터 활동 중단과 컴백의 기법을 사용했다. 잘 짜인 고도의 전략이나 마케팅일 수도 있겠지만 서태지가 1992년부터 일 년에 한 개씩 1996년 은퇴할 때까지 총 네 개의 앨범을 냈다는 사실을 알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으리라는 것도 계산이 된다. 곡의 비축분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 활동에 콘서트까지 하고 새로운 안무를 익히고 작곡도 하고 녹음도 하고 이게 일 년 안에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미스터리다(은퇴하는 날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표현은 이 모든 걸 포괄하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중단과 컴백 시스템은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활동 중단의 아쉬움과 컴백의 기대 이런 루틴의 반복. 지나고 와서 보니 은근히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앞에서 말한 기다리는 마음.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는 뭘까. 어떤 모습일까. 무슨 음악일까. 항상 궁금했고 마음이 쫄깃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바로 동네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서 문을 열고 외쳤다. ‘나왔어요?’, ‘그래 나왔어 여기’ 돈을 지불하고 카세트테이프를 건네받는다(용돈 예산문제로 시디는 생각도 못 했고 테이프만 샀다) 케이스를 앞뒤로 살펴보며 집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심장이 따뜻해졌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집에 와서 혹시나 훼손될까 아주 조심스럽게 겉 비닐을 벗겨내고 테이프를 꺼내 오디오에 넣는다. 처음 샀을 때 테이프 케이스는 잔흠집 하나 없이 물방울처럼 투명하고 깨끗하다. 새 거라는 느낌이 물씬 난다. 앞으로 세월이 지남에 따라 금방 흠집이 나고 금이 가거나 떨어뜨려서 깨질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비닐을 막 벗긴 이 깨끗한 상태를 최대한 즐긴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표지를 벗겨서 가사집을 펼쳐본다.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한 줄 한 줄 눈으로 따라가며 읽고 듣는다. 노래 조금 별로인 거 같아도 일단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듣는다. 바야흐로 서태지다. 내 귀가 막귀일 순 있어도 서태지가 틀릴 일은 없다. 가사집에 수록된 사진이나 텍스트는 모두 꼼꼼하게 살핀다. 앨범 발매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멤버들이 짧게 한 마디씩 쓰는 Special Thanks to까지 빠짐없이 읽는다. 거기에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 최근에 서태지가 누구랑 친하고 멤버들이 어떤 가수들이랑 인맥이 있구나 하는 정보이다. 다 읽었으면 길게 펼친 가사집을 다시 조심스럽게 접에서 케이스에 끼워둔다. 혹시라도 힘을 많이 주거나 땀이 나서 훼손당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앨범 총 러닝타임 45분을 온전히 즐긴다.
마치 햄버거를 포장해 와서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기고 가장 위에 있는 빵부터 중간에 샐러드, 패티까지 순서대로 먹기 시작하는 것처럼(핫도그 겉에 밀가루 반죽 먼저 먹고 속에 있는 소시지를 따로 먹는 것처럼. 어릴 때 다들 이렇게 먹지 않았나?) 레코드 가게에서 앨범을 사서 집에서 듣는 일련의 모든 순간을 즐겼다.
예전에는 참 그런 재미가 있었다. 물론 요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마음을 붕 띄워 주는 음악을 만나기도 하고 가끔은 좁고 불편한 소극장 의자에 앉아 연극을 관람하기도 하지만 어릴 적 몽글몽글 했던 내 감수성이 만나는 예술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시절 탓도 있지만 어쨌든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런 내 즐거움을 처음 느끼게 해 준 아티스트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