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방송을 나도 봤다. MBC ‘특종 TV 연예‘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함께 당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 매주 챙겨 보고 있었다. 사회자인 임백천이 신인을 소개하는 코너임을 알리는 멘트를 했고 ‘그럼 직접 만나보시죠’와 같은 소개 이후 ‘난 알아요’의 도입부 신디사이저 소리가 들렸다. 그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처음 시작이었다.
잠시 후 심사위원들의 평이 이어졌다. 혹평을 받았다(서태지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유명한 에피소드다) 그날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야말로 떠버렸고 그 바람에 그들을 몰라봤던 심사위원들에게 아주 날 선 비판과 조롱이 쏟아졌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낡은 잣대로 난도질했다는 일종의 상징성을 가지며 오랜 기간 회자되었다.
그런데 심사평, 솔직히 그 정도로 나쁘진 않았다.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 유튜브로 다시 찾아봐도 같은 생각이다. ‘특종 TV 연예’를 자주 봤던 애청자로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신인 소개 코너를 처음 론칭한 자리였고 첫 타자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다. 심사위원들도 처음 평가를 하는 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말과 비판을 어느 정도로 섞어야 할지 수준은 어느 정도로 할지 정하지 못했다. 사격에서 처음 영점 조절하는 단계였던 셈이다. 이렇게도 쏴 보고 저렇게도 쏘면서 향후 심사평의 수위를 조절하면 되었는데 하필, 영점 조절하는 날 과녁이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평가는 이랬다. ‘멜로디가 약하다’, ‘가사가 신선하지 않다’, ‘춤이 화려해서 노래가 묻힌다’, ‘메탈을 접목했는데 글쎄 평가는 대중에게 맡기겠다’. 점수는 10점 만점에 7.8점. 최악의 점수라는 것도 서태지 신화 스토리에 자주 언급되는 말 중에 하난데, 영점 조절을 마친 심사위원들이 서태지 이후부터는 적절하게 칭찬도 하고 비판의 수위도 조절하며 점수를 후하게 주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서태지는 본인이 직접 만든 데모 테이프로 기획사를 돌았고 여러 군데에서 대차게 거절을 당했다는 일화를 얘기한 적이 있다. 심사위원들도 그들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인데 하필 대중 앞에 이름과 얼굴을 전면에 걸고 나오다 보니 그 시절 꼰대의 대표적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그랬건 말건 방송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은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학교가 난리가 났다고 한다. ’너 그거 봤어‘ 하며 목격담이 줄을 이었고 그날 받은 충격을 서로 공유했다고 한다. 정작 나는 또 그 정도는 아니었고(학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회오리 춤 그거 신기하던데 한 번 더 보고 싶다 정도였다.
음악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그 심사위원들의 말에 따랐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해도 되는 건지 하면 안 되는 건지 어른들이 평가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난 알아요’를 듣고 뭐가 그냥 훅하고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면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모두 듣고는 ‘그지? 이상한 거 맞지?’ 정도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회오리 춤이 계속 생각났다. 그 춤을 떠올리다 보니 노래의 비트와 리듬까지도 머리에 맴돌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 맞춰서 다시 티브이 앞에 앉았다. 회오리 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앞에 전주가 나오면서부터 벌써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이미 그들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특종 TV 연예’ 데뷔 무대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패션이나 무대매너가 점차 전문 연예인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서태지는 검은색 벙거지 모자를 ’난 알아요‘ 무대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패션도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랩 가사를 외우고 춤을 따라 하며 서태지와 아이들은 내 마음속에서 아이돌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