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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춘 Oct 07. 2024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

서태지가 이런 것도 했다를 쓰기 위해 준비했지만 사실 ‘내일은 늦으리’의 주인공은 신해철이다.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 주오’라는 ‘더 늦기 전에’의 후렴구 가사는 지금도 잊지 않고 단숨에 적을 수 있다.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너무 멋진 노래다. 신해철이라는 가수를 이때 처음 알았다. 데뷔곡 ‘그대에게’는 너무 어릴 때였고 히트곡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초등학생에겐 어려웠다.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 이 기사를 공감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신해철과 달리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야말로 율동 위주 그룹이었으니까 초등학생에게도 충분히 매력 어필이 되었는데 당시 젊은 가수, 이를테면 윤상이나 신해철이나 신성우 같은 사람들은 그냥 담배 피우는 삼촌 같은 느낌이었다. 거리감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난 알아요’ 이후 ‘환상 속에 그대’까지 연속 대히트 치고 나서 신곡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른 가수들과 공동으로 낸 앨범이라고 했다. 들어보고 싶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는 친구에게 하루만 빌려 달라고 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앨범 재킷에 ’내일은 늦으리‘라고 쓰여있고 환경부 마크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 플레이리스트를 보니 오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다. 제목은 ’나를 용서 해 주오‘ 카세트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고 앨범의 첫 곡부터 천천히 감상하다가 못 참고 테이프를 앞으로 감기를 하여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들었다. 음 솔직히 얘기해서 노래가 막 엄청 좋다는 느낌은 없었다. 한창 인기 있던 ’환상 속에 그대‘와 같은 노래는 리드미컬하고 멜로디 위주의 노래를 기대했는데 그렇진 않았기 때문이다(다소 실험적인 노래였다). 일단 몇 번 더 들어보면 다르겠거니 했는데 사실 것보다 가장 처음에 들었던 노래가 자꾸 생각났다.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곡 ‘더 늦기 전에’. 그게 훨씬 좋았다. 참여한 모든 가수들이 한 마디씩 노래를 부르는데 ‘이거 누구다’라며 가수를 맞추는 재미도 쏠쏠했다. 서태지 목소리는 끝까지 안 나오다가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들을 수 있는데 장난꾸러기 같은 목소리의 서태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생각이 나서 다시 들어봤는데 내 귀는 이미 신해철 특유의 내레이션이 더 익숙해진 탓에 서태지 목소리가 조금 어색하게 들리긴 했다(‘이렇게 하는 게 아닌데’ 같은 느낌) 어쨌든 가창력이 쟁쟁한 가수들을 속에서 굳이 서태지를 보컬로 밀어 넣지 않고 내레이션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게 한 것도 메인 프로듀서인 신해철의 영리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내일은 늦으리’ 앨범은 초등학생에게는 약간 사치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여러 곡 수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한곡 그리고 합창에서 한곡 정도 들어 있는 앨범을 돈을 들여 산다는 건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해야 했다. 대중가요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서 좋아하는 가수가 한 둘이 아니었거나, 엄마가 용돈을 많이 주는 편이거나 아니면 오빠나 형이 있거나. 나는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아 친구에게 빌려서 공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들었다.


앨범을 소유하는 것 말고도 ‘더 늦기 전에’ 노래를 아는 것만으로도 당시 또래들 사이에서는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유행하는 노래가 아닌 숨겨진 걸 애써 찾아서 듣는 음악 꽤나 듣는 양반처럼 굴 수 있었다. 일단 초등학생이 신해철의 노래를 듣고 ’그 노래 참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약간 어른스러운 행동에 속했다. 친구에게 카세트테이프를 돌려주며 ‘야 잘 들었다. ‘더 늦기 전에’도 좋지만 넥스트의 ‘1999’ 그건 정말 한 편의 영화 같더라. 역시 신해철’과 같은 평을 남기면 주변에서 그게 뭔데 하며 친구들이 궁금해했다. 지금이다. 뒤돌아 보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한마디,


“넥스트. 몰라? 신해철”


특히 음악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있는 정서인데 남들이 잘 모르는 노래를 내가 안다는 사실은 은근한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게 해 준다. 친구들 중에도 어느 가수의 타이틀곡 보다 앨범에 수록된 다른 좋은 노래를 더 좋아한다며 고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도 약간 비슷한 심보다.


‘내일은 늦으리’는 1996년을 끝으로 이후 H.O.T, 언타이틀과 같은 1세대 아이돌들이 주축이 되는 ‘드림콘서트’로 명맥을 이어 나갔다. 여기서부터는 색깔이 많이 달리 지는데 여자 학생들의 기센 팬덤 문화로 시대가 도래한다. 그녀들의 손에 들려있는 건 분명히 색깔 있는 풍선인데 마치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무섭게 흔들어댔다. 어느 조직의 드림이 끝내 승리하는지 보자는 식의 경쟁 같았다. 본인이 밀고 있는 가수가 나오면 미친 듯이 주먹을, 아니 풍선을 흔들었다. 사실 그 그림에서 풍선만 제거하면 ‘독재 타도’를 외치는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전운이 감돌았다. 그렇게 환경에 대한 메시지는 거의 사라졌고 그러거나 말거나 ‘드림콘서트’는 2024년 30주년을 맞이하면서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때문에 듣게 되었지만 나는 이 앨범을 통해 신해철을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처음 산 LP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Live&Techno Mix’였지만 최초로 구매한 CD는 ’인형의 기사‘, ’도시인‘이 수록된 넥스트 1집 ‘HOME’이었다. 서태지에서 시작해서 점차 삼촌이나 이모들 노래까지 두루 섭렵하며 나 역시 음악적으로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진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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