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하 Apr 08. 2024

안목이라는 것

심연을 보다

해외 평론가들은 'profound(심연)'이라는 단어를 비평의 도구로 즐겨 활용합니다. 작품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거죠. 맞습니다. 예술은 언어로 묘사 불가능한 것을 표현합니다. 때론 예술가 자신도 알 수 없는 원인과 이유를 심연에 품은 채, 잠재의식 속에서 바라본 어떤 것을 화산처럼 뿜어냅니다. 그들의 천재성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작품에 마음이 닿아 진짜를 바라보는 능력이 안목입니다. 형식주의 비평에서 처럼 먼저 보았으므로 마음이 닿을 수 있고, 맥락주의 비평에서 처럼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난 후 매료될 수도 있습니다. 외모에서 진심을 보든, 진심을 보고 외모에 끌리든 상관없습니다. 의미 있는 만남을 이루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죠. 모나리자의 알듯 모를 듯한 신비한 미소와,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 속, 소용돌이치는 큰 별과 달을 보고 기묘함과 황홀감에 사로잡히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안목입니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보죠. 지난 장에서 언급했던 슈베르트의 <마왕>을 감상해 봅시다.


괴테가 이곡을 외면한 사실에 대해 용서할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대작입니다. 왜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상황 속, 절박한 셋잇단음표 말발굽 소리에 감흥 받지 못했을까요? 또한, 암울하고 군급하게 휘감기는 왼손 피아노 라인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괴테라면 그러지 말았어야죠. 당시 바이마르 극장과 오페라단의 총감독직을 오랜 시간 맡았을 만큼 음악 전문가였던 그였습니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감상해 봅시다.

분위기에 따라 최적의 속도와 셈여림을 조절할 줄 아는 그의 연주는 도입부에서부터 숨이 멎을 것 만 같은 긴장을 느끼게 만듭니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신들린 듯 몰아치는 그의 표현력은 관객들의 심장을 박동 치게 하기에 충분하죠. 한 음절마다 메시지가 들리고, 악절 속에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메시지 혹은 스토리는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치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으로 초대받아서,  미지의 형상들의 몸짓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무심코 쇼핑몰을 걷다가 "바로 저 옷이야!"라고 외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전문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죠. 이 정도의 눈썰미라면 예술작품에 대한 안목 또한 내재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이 전율을 느끼며 언어로 표현 못할 무언가를 보았다면, 심연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 대상은 틀림없이 진품입니다.

이전 07화 예술가의 운명이 나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