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운명이 나에게...
작품을 꿰뚫어 보는 눈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500여 곡의 대작을 작곡하는 동안, 세상은 그를 그저 그런 평범한 작곡가들 중 하나로 치부했습니다. 평생을 배고픈 음악가로 살았죠. 불운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작품을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독일의 대 문호 괴테에게 악보와 서한을 보내어 홍보했고, 친구 슈파운의 도움으로 악보출판을 기획하였지만, 그의 음악은 큰 호응을 받지 못했습니다.
미술에서도 인상파를 대표하는 반 고흐 역시 슈베르트와 비슷한 전철을 밟으며 당대에 빛을 보지 못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 둘 뿐 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 까미유 끌로델, 후고 볼프 등 사후에야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은 예술가가 한 둘이 아닙니다.
왜 전문가와 대중은 이들이 살아 있을 동안 걸작임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죽고 난 이후에야 위대한 작품임을 깨달은 이유는 뭘까요? 혹자는 이들의 작품이 지나치게 파격적이어서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는 논리로 설명하려 듭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슈베르트보다 앞선 작곡가 베토벤은 그의 음악이 너무 과격해서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 “어린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작품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파격적이었지만, 그는 당대에 인기 있는 음악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미술사에서도 고흐보다 먼저 인상주의적 색채를 띤 작품을 그린 에드가는 당시의 규칙을 벗어난 붓의 터치와 주제, 그리고 사실주의 파괴라는 급진적인 방향성을 갖고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명성을 얻었죠.
예술가의 작품과 자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부족했던 것이 큰 원인 중 하나이었을 것입니다. 안목이 부족했던 거죠. 동시대의 주류예술가들은 이런 보석을 보고도 외면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괴테는 슈베르트가 그의 시로 작곡한 세기의 걸작 <마왕>이라는 작품을 외면한 채,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멘델스존의 음악만을 평생 격찬했었습니다. 당시에 중심이 되는 작곡 사조나 흐름에만 관심을 둔 것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로 보입니다. – 참고로, 베토벤은 자신의 죽음 일주일 전에 슈베르트와 그의 작품을 만났고, 슈만은 슈베르트의 사망 이후 그의 악보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이 둘 모두 슈베르트의 작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자, 이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나는 작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봅시다. 혹은 미래의 누군가가 “저 위대한 예술가가 살아 있을 동안 조상님들은 무얼 했습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나는 책임이 하나도 없소.”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는 누구나 예술의 홍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죠. 과거에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대중에게는 제한적인 작품 감상의 기회만이 주어졌습니다. 당연히 모든 작품의 비평은 당시 음악 전문가들의 몫이었겠죠.
지금은 다릅니다. 엘리트 전문가들에게만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검색엔진만 돌리면 무수한 예술과 감상에 대한 정보들이 모니터에 뜨고, 각 시, 도마다 무료공연이나 전시회도 심심치 않게 열립니다. 백화점의 이벤트 룸에서도 공연이나 작품전시회를 열기도 합니다. 심지어, ‘찾아가는 음악회’까지 기획합니다. 이제 예술은 완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핑곗거리를 찾기가 어려운 시대가 왔죠. 천재 예술가의 작품들이 죽음 후에야 재평가를 받는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품 감상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을 감상자와 예술가 모두에게 얻게 해 줍니다. 감상자에게는 안목을 키워주고 예술가의 작품에는 진정한 가치가 매겨지죠. 지금 이 시간에도 슈베르트와 고흐 같은, 오늘을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밤을 새우며 외로운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재적 걸작들이 당신 앞에 끝없이 줄지어 대기하고 서 있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다리고 있죠. 감상하십시오. 그리고 자신만의 가치를 매기십시오. 감상자에게 주어진 행복한 권리입니다. 나의 소감 한 마디가 천재 예술가 한 명에게 큰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덧붙임 – “어떻게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 보는 안목과 통찰력을 갖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