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예술가
헨델의 <메시아> - 감옥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 정신병원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 - 병상에서(인후암 투병)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 냉방에서 (극빈의 삶)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은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선별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작곡가들은 죽음이라는 운명에 근접해 있던 상태였습니다. 명예, 체면, 위신, 자존심, 성공 따위를 의식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창작활동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사치였을 것입니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장신구들을 가차 없이 내려놓은 채, 그들의 시한부 열정을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해 불태웠습니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을 것이라 상상이 됩니다. 그러다 푸치니의 <투란도트>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처럼, 미완성된 걸작을 병상 옆에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꼭 죽음 앞이 아니어도, 버거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위축됩니다. 사람 상대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만남 자체에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설령, 큰 용기를 내어 만난다 한들, 마음에 상처만 받고 오기 일쑤입니다. 필연적으로 외톨이의 삶을 살게 되고,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바로 이 순간! '민감성'이라는 예술적 기질이 강화된다고 심리학에서는 말합니다. 이런 고립상황은 타고난 섬세함을 가진 예술가들을 자신만의 세계로 한 없이 빠져 들게 만듭니다. 그들의 인생작이 만들어지는 시작점이죠. 극한 고통과 역경은 위대한 걸작을 남기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고, 창작활동의 원동력이 됩니다.
배부른 예술가
그러면, 시한부이거나, 가난하거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예술가의 필수 코스일까요?
천재 예술가들은 가난이나 고통을 겪지 않아도, 공감하는 능력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민감성’이 충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영주(바이올리니스트)는 11살, 장한나(지휘자, 첼리스트)는 12살에 데뷔해 전 세계를 휩쓸며 연주를 했습니다. 이들은 한 번 도 경험하지 못했던 시련이나 수난과 같은 아픔의 영역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줄 압니다. 천부적인 능력이 여기에서 돋보이게 되죠. 꼭 나쁜 짓을 해봐야 악역을 잘하는 게 아닙니다.
현재를 사는 예술가들은 물질적으로 여유로운 환경과 훌륭한 스승 밑에서, 차곡차곡 기본을 쌓아갑니다. 그들은 타고난 천재성과 자유분방함을 무기로 최고의 작품들을 탄생시킵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번스타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피카소,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백남준 등은 모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 천재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의 대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예술가의 역경, 고난, 고통, 방황, 가난 등의 단어는 이미 지나간 시절 이야기입니다. 천재성, 동기부여, 영감, 흥미, 최고의 유전자, 괴물 등의 수식어가 어울리는 시대가 왔죠. 심지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해 온 ‘피나는 노력’이라는 말조차 구식이 되어버렸습니다.
2014년 미국 잼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연구팀은 노력과 선천적 재능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음악 부분에서 재능이 차지하는 비율은 79%, 노력은 21% 라고 합니다. “노력은 천재를 이기지 못하고, 천재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는 말이 꼭 맞는 시대입니다. 비단 음악분야뿐일까요?
이제는 예술가든 일반 달인이든, 배고프면 안 됩니다. 천재의 배가 고플 수 록 예술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확률도 점점 올라갑니다. 그러다 활동을 포기하는 수가 있죠. 이는 곧 예술계의 손실로 이어집니다. 천재 예술가들에 대한 꾸준한 후원과 관심은 이런 마이너스 확률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덧붙임. 한 줄 정리합니다.
- “배부른 예술가가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