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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하 Jul 08. 2024

아, 불완전한 아름다움이여!

불완전함의 미학

요사이 로봇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고 컴퓨터음향으로 클래식 연주를 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인간 음악가들의 라이브 공연은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컴퓨터가 들려주는 음악을 들어보면, 아주 절대적이며 오차 없이 악보대로 연주합니다. 인간 음악가들이 추구하는 바를 컴퓨터가 실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치명적 단점이 있죠. 극도로 건조하고 매력 없이 음악이 진행됩니다. 가벼운 기계음이라는 것을 가만하더라도 표현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나타냄말을 음악적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죠. 컴퓨터는 “con moto (감동적으로), grazioso (사랑스럽고 우아하게), religioso (경건하게)” 등의 악상표현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인간들의 공연실수에 대한 공포를 안고 진행됩니다. 동시에, 연주 내내 관객과 연주자 사이에 심장을 뛰게 하는 긴장이 늘 존재하죠. 이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끌립니다. 인간의 연주는 수학적 분할을 요구하는 빠르기나 화음내기가 미세하게 부정확할 수 있으나, 음악적 표현만큼은 사람의 음악이 기계에 비해 월등히 앞섭니다. 사람의 연주가 감동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불완전한 인간의 연주가 주는 감동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는 끊임없이 완전성을 추구하지만, 기계적인 완전함은 거부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기계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인류의 나약함을 느끼지만, “나”라는 인간을 절대로 기계나 시스템과는 비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인간들의 집합체이지만, 그 집합체가 또한 사회를 이끌어 나가며 성공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 때문이죠.

지휘자는 기계 앞에서 지휘를 하지 않습니다. 기계 앞에서는 지휘자도 불완전한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겠죠. 예술에 있어서 절대적 완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완벽을 향해 기술을 연마하고 필요한 시간에 적절하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 애쓰는 인간의 행위 자체가 음악예술인 것입니다.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와 구성원들은 오케스트라의 단원과 같습니다. 각자의 악기를 잘 다듬고 스스로의 기술을 충분히 연마하여 필요한 시간에 적절하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지휘자를 두느냐에 따라 어떤 오케스트라가 될지가 판가름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러나 이 불완전체를 어떻게 하면 가장 감동을 주는 단체로 만드느냐의 고민 또한 지휘자들의 몫입니다. 아, 불완전한 아름다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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