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을 가진 자들 중 노동을 위해 하나의 근육, 피부나 관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혹사시킨 부위가 기형이나 병으로 발전되기도 하죠.
예술가의 직업병
예술가들도 이러한 리스크에 노출된 상태로 활동을 합니다. 성악가들은 성대를 오용, 남용하여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고 결국엔 연주활동을 장시간 멈추어야 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납니다. 현악기 연주자들은 연주 시 필연적으로 오랜 시간 휘어질 수밖에 없는 척추 때문에 척추 측만증이 목, 허리 등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미술분야에서도 붓을 쥔 화가의 손목에 무리가 와서 관절염이나 손목터널증후군으로 평생을 고생하기도 하죠.
예술가는 해당 부위에 이상이 자주 발생해 활동에 심각한 방해를 받고, 심하면 연주 생명이 끊기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있다는 거죠. 심각한 지장 없이 나이가 들어도 왕성한 대가로써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상처 난 예술가
세계 3대 테너의 대를 이을 만했던 테너 롤란도 비야손은 강질의 소리로 연속공연을 했습니다. 목을 혹사시켰죠. 결국, 몇 년 치의 예정된 공연을 젊은 나이에 취소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의 성대가 생각보다 약했던 겁니다. 미술에서도 인상주의 대가 르누아르는 휴식 없는 작업을 이어 갔습니다. 손목 류머티즘이 발생했죠. 중기 이후 그의 작품들은 자신의 화풍이 맞나 싶을 만큼 밋밋한 선으로 작품을 그렸습니다. 손목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들 모두 과욕이 부른 참사입니다.
롱런한 예술가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88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무리 없는 운지법,
신체 능력 밖 연주 지양,
자신의 기술에 부합하는 레퍼토리 선택
이라는 철칙 아래, 깊이 있는 연주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연습량도 하루 3시간을 넘기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명성과 현역으로써의 활동을 오래 유지할 만했습니다.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조차도 과한 표현보다는 냉철함이 묻어납니다. 게다가, 유전적인 이점도 있었습니다. 비교적 작은 체구에 비해 손가락이 길었다고 하죠. 관객들은 거장의 라이브 연주를 90세가 될 때까지 감상할 수 있는 귀와 눈호사를 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 진정한 프로였습니다.
미술분야에서는 무위도식하며 다 가진 예술가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3대 화가 중 한 명인 장승업이라는 예술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술과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그냥 음주가무가 그의 직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번뜩하고 영감이 떠오르면 붓을 거침없이 휘두릅니다. 그럼에도 그의 화풍은 놀라웠습니다. 누가 봐도 역동적이면서 화려합니다. 게다가 섬세한 기교까지 갖추었죠. 고종 때 궁궐 화원으로 임명받고,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그의 그림이 조선의 대표 선물로 보내지는 영광까지 얻은 사람입니다. 물론 보헤미안 같이 자유분방한 그는 말년까지 일관성 있는 화풍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노력이 이기지 못 한 재능
노력으로 부족한 재능을 이겨보려는 욕심은 몸을 상하게 합니다. 신에 대한 도전에 벌을 받은 거죠. 좋은 면에서는 예술의 완전성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신이 정해 준 만큼만 가질 수 있습니다. 불공평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조물주가 이렇게 세팅한 걸 어쩌겠습니까. 받은 것 이상 가지려 할 때,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기본기를 갖춘 기성 예술가들은 자신이 가진 한계의 경계선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프로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영감을 나의 육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 까지만 가지고 들어와야 합니다.
영광의 상처는 전쟁이나 스포츠에서 쓰는 말입니다. 예술은 승부가 본질이 아닙니다. 자신의 작품으로 오랜 세월 관객과 소통하며 공감하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때론 노년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젊은 예술가의 그것에서는 볼 수 없는 오랜 인생의 고결함이 느껴집니다.
덧붙임.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감상해 봅시다.
* 테너 롤란도 빌라존이 2009년 성대수술을 받기 전과 후의 공연비교
* 88세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의 마지막 음반과 공연
* 화가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 1884년 작품과 1919년의 작품 비교
*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선물한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4점 <노자출관도, 취태백도, 황희지관아도, 고사세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