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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루 Dec 19. 2023

88년생 쌍가락지

기억에 남는 생일선물

  엄마의 생일이 다가왔다. 동생과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시장 옆 금은방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가게  앞만 서성였고 가격만 물어보기를 수차례. 무얼 사든지 싸게 주겠다는 주인아저씨의 약속을 받아내고는 곧장 집으로 와서 TV 옆에 있던 빨간색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랐다.


  '엄마는 무슨 색을 좋아하지? 초록색? 파란색? 잘 모르겠다.'


  일단, 단골집 슈퍼에 가서 동전을 지폐로 바꾼 다음 금은방으로 서 가장 저렴했지만 제일 화려한 색으로 채워져 있는 칠보 은쌍가락지를  골랐다. 그 당시 학교 앞 구멍가게 주전부리가 백 원이었는데,  반지 가격이 만 오천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엄마에게 쌍가락지를 선물하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내 손에도 동생 손에도 문방구에서 파는 보석 반지가 있었지만, 우리 엄마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의 폐물함(?)에는 액세서리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1988년 그 당시 속설 때문이었다.

 '맏딸이 은 쌍가락지를 선물하면 무병장수한다더라'

1988년 선물했던 은쌍가락지

  "엄마! 기대해. 우리가 특별히 준비했어. 아마 엄마는 상상도 못 한 선물일 거야!"

  잔뜩 신이 난 나는 엄마에게 **금은방이라고 찍혀있는 반지상자를 내밀고 엄마의 반응을 살폈다.

  엄마가 웃는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반지를 꺼내든다.

  "기특하게 이런 생각을 했어? 정말 예쁘네. 고마워. 평생 간직할게."

  "응. 엄마, 오래오래 살아."

  엄마는 헛도는 반지를 이 손가락 저 손가락에 꼈다 뺐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이불 꿰매는 두껍고 하얀 실을 여러 번 감아 반지를 끼고 다녔다. 엄마가 반지를 끼고 다녔던 그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엄마의 지인들로부터 '역시 딸 밖에 없다.' '착하다' '기특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35년이 훌쩍 지나갔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그때의 엄마보다 더 어른이 되었다. 엄마 집에 갔다가 거뭇거뭇해져 세월의 흔적을 품은 반지를 내 손에 끼워봤다.  

  "엄마 이 반지 생각나?"

  그때의 추억을 소환했다.

  "그때 반지가 커서 바꾸고 싶었지만, 너희가 골라온 반지라서 그냥 끼고 다녔지. 이사할 때도 가장 먼저 챙기는 반지야."

  손마디가 굵어진 엄마의 손에는 이제 않고,  내 손에선 빙글빙글 헛돈다.  평범했지만 어쩌면 특별했을 1988년 11월 *일 그날의 추억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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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엄마의 생일이 다가왔다.


#엄마생일선물 #1988년도  #칠보은쌍가락지 #추억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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