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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맑음 Sep 15. 2024

뻐꾸기의 비행

유맑음 동화#3

  그녀는 뱃속에 나를 품은 채 자유로이 하늘을 누볐다. 그땐 우리의 보금자리를 찾는 행복한 날갯짓인 줄만 알았다. 나는 어떤 곳이든 그녀와 함께이면 다 괜찮았다. 차가운 지푸라기 더미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그녀에겐 나를 버리고 갈 둥지가 필요했다.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나는 혼자였다. 더 이상 그 뻐꾸기를 ‘엄마’라고 부를 수 없었다.




 알껍데기에 갇힌 나는 낯선 둥지에 놓였다. 까슬까슬한 나뭇가지가 얽혀 바삭거리는 소리와 미묘하게 뜨끈해진 온도로 알 수 있었다. 역시 내 옆에 ‘엄마’였던 그녀는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봤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이 둥지 안에는 나 말고 다른 알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얼른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함께하는 녀석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녀석들도 나처럼 버려진 걸까?

 만약 둥지 주인의 알들이라면, 나는 하루빨리 알껍질을 깨고 나가야 했다. 내가 버려진 알이란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토독, 톡.


 나는 있는 힘껏 알껍데기를 두드렸다. 마침내 강한 햇살이 알 속을 파고들었다. 벌어진 틈을 비집고 나와 흐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토록 궁금했던 녀석들은 다행히 아직 알속에 잠들어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 앉았다. 그러고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깨어나길 손꼽아 기다려온 듯했다. 기분이 싫지 않았다.


 이 새가 녀석들의 어미 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초롱거리는 눈으로 나를 한번 보고는 다른 알들도 조심스레 살폈다. 그들도 얼른 깨어나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 어미 새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내쫓길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엄마! 엄마!”


 나는 처음 보는 어미 새를 ‘엄마’라며 목청껏 불렀다. 저 알들이 아니라 나만 봐줬으면 했다.


 “엄마! 나 배고파요! 알을 깨고 나오느라 힘들었단 말이에요!”

 “그래, 아가. 조금만 기다리렴. 얼른 먹이를 물어올게.”


 엄마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이었다. 다른 알들이 깨어나기 전에 나는 엄마가 가장 예뻐하는 새가 되어야 했다.


 “엄마! 먹이는 이게 다예요? 이걸로는 부족하다고요!”

 “엄마! 빨리요! 나 아직도 배고파요!”

 “엄마! 더 주세요! 더! 더!”


 엄마에게 한시도 눈 돌릴 틈을 주어선 안 되었다. 계획대로 엄만 오직 내게만 먹이를 물어다 주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며칠 지나지 않아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녀석들이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토독, 토독.


 엄마는 내가 알을 깨고 나왔을 때와 같은 표정을 하고선 갓 태어난 녀석들을 쓰다듬었다. 나는 쓰다듬어준 적 없으면서……. 녀석들은 조그만 입을 쩍쩍 벌리며 먹이를 원했다. 엄마는 잠시 기다리라며 날아갔다가 이내 먹이들을 잔뜩 물어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먹이들은 다 내 차지였다. 하루아침에 엄마도 먹이도 모두 빼앗겼다.


 먹이를 받는 순서도 생겼다. 기가 막혔지만 다행히 첫 번째는 내 차지였다. 먹이를 가장 먼저 받아먹기 위해서는 입을 최대한 많이 벌려 다른 입들이 엄마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했다. 먹이를 첫 번째로 받아먹는 데 성공하고 나면 꼭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에겐 네가 제일 소중해.’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계속 조바심이 났다. 저 애들이 깨어난 이후로 엄마는 자꾸 우리를 공평하게 대하려 했다. 떼를 써 봐도 내게 먹이를 더 많이 주는 일은 없었다. 이러다 ‘넌 원래 내 자식이 아니잖니. 이쯤 했으면 그만 둥지 밖으로 나가줘.’라는 말까지 나올까 봐 자꾸만 두려워졌다.

 

 어김없이 새 아침이 찾아왔다. 엄마는 먹이를 구하러 나갈 참이었다. 나는 가려는 엄마를 붙잡고 물었다.

 “엄마, 오늘도 내가 첫 번째지요?”

 매일 먹이를 첫 번째로 받으면서도, 오늘은 괜히 엄마의 당연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글쎄, 다른 아기 새들이 입을 더 크게 벌리면 또 모르지?”

 엄마는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으며 나무 숲 사이로 날아갔다. 나는 엄마의 대답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는 역시 자기가 직접 낳은 새들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억울함에 화가 솟구쳤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입을 쩍쩍 벌리기 시작하는 저 녀석들이 얄미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눈에 힘을 주어 저 애들을 노려보았다. 연신 아래위를 훑고 보니 난 쟤들보다 덩치가 월등히 컸다. 땅콩만 한 녀석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둥지 벽도 새삼스레 다시 보였다. 벽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오기까지 시간도 넉넉했다. 그래, 난 그저 엄마랑 단둘이 살고 싶을 뿐이야.


 나는 마른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저 애들을 등지고 섰다. 두 날개에 힘을 바짝 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을 했다. 도망칠 공간이 없어진 녀석들이 째-액, 째-액 비명을 질러댔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지…….’


 걱정은 잠시였다. 등 뒤로 허우적대는 아기 새들의 모습이 슬쩍 보였다. 그들은 엄마를 애타게 부르짖었다. 흔들렸던 마음이 다시금 굳어졌다.


 엄마는 내 거야……. 엄마는 내 거라고…….      

 툭, 툭, 툭.

     

 기어이 나는 엄마를 독차지했다. 이제 첫 번째가 아니라고 실망할 일도, 또다시 버려질까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졌다. 엄마가 돌아와 나를 쓰다듬어주기만 하면, 다 괜찮다.


 오늘따라 엄마는 늦게 둥지로 돌아왔다. 먹이를 구하느라 고생을 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었냐고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오늘만큼은 말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냥 나는 여느 때처럼 입을 크게, 아주 크게 벌렸다.


 엄마도 평소와 같았다. 내 입에 먹이를 나눠주며 생긋 웃어 보였다. 엄마는 사라진 아기 새들을 찾지도 않았다. 사실 엄마도 다른 아기 새들까지 키우기 벅찼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나와서, 먹이도 내가 제일 잘 받아먹어서, 그러니까 나를 제일 좋아해서 그 애들을 찾지 않는 거라고 믿었다.


 엄마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한결같이 날 보살폈다. 내 몸집은 진즉 엄마를 뛰어넘었고, 둥지에도 꽉 들어찼다. 이제 곧 둥지를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엄마! 나 이제 둥지가 작아서 여길 나가야겠어요!”

 “정말 그러네. 우리 아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지?”

 “그런데 엄마는 둥지를 왜 이렇게 작게 만들었어요? 처음부터 크게 만들었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아기 새들이 사라진 뒤로 나는 엄마를 조금 더 편하게 대했다. 엄마도 나밖에 없으니까, 날 내쫓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좁아터진 둥지를 나온 이후에도 난 엄마를 끊임없이 찾았다. 날 버렸던 그 뻐꾸기가 머릿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으, 이 벌레는 싫어요! 맛이 쓰단 말이에요!”

 “오늘은 먹이 더 없어요? 아직 배가 안 찼다고요, 엄마!”


 엄마를 분명 독차지했는데, 어째서인지 계속 허기가 졌다. 게다가 둥지를 나와 있으니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인 느낌도 들었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필요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내 볼을 쓰다듬었다.


 어느덧, 세월은 나를 자라게 했다. 서툴지만 먹이도 스스로 구할 수 있었고, 하늘을 가로질러 날 수도 있었다. 이제는 나이 든 엄마보다 내가 더 잘하는지도 모른다. 기나긴 겨울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했다. 목적지는 모르지만 본능이 향하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깃털이 빈약해진 엄마는 떠날 준비를 마친 내게 말했다.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맙구나. 언제든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날아가렴.”


 촉촉해진 엄마의 눈가를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아기 새들이 사라진 이유를 지금이라도 말해야 하나 순간 고민이 되었다. 떠나는 마당에 못할 말이 뭔가 싶다가도, 포근한 마지막을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훌쩍 떠났다.


 엄마를 뒤로 하고 나 홀로 하늘을 날아온 지 수 일이 지났다. 먹이 정도는 거뜬히 구할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오늘은 먹이를 구하려다 독수리에게 된통 당할 뻔도 했다.


 앉을 만한 나무를 찾아 잠시 나뭇잎 사이에 숨어있던 찰나였다. 내 위로 보이는 조그마한 새 둥지가 들썩이고 있었다. 째-액, 째-액. 아기 새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둥지 밖으로 아기 새의 머리가 들쑥날쑥하고 있었다.


 악몽 같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저 둥지에도 누군가 버려지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그러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아기 새 하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익숙한 광경에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기 새의 시들어가는 숨소리가 가슴을 조여왔다. 얼른 건너편 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그 나무에는 떨어진 아기 새의 어미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미 새의 부리에는 먹이가 한가득 물려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했다.


 어미 새는 떨어진 아기 새를 향해 빠르게 날았다. 이미 아기 새는 풀숲들 사이에 묻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미 새는 풀숲 이곳저곳을 파헤쳤다.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어미 새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해가 다 지도록 소리 없이 울었다. 아기 새가 떨어진 둥지 바로 아래에서.


 어미 새가 한참을 울고 나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미 새는 풀숲을 뒤지느라 떨군 먹이들을 하나 둘 되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기다리는 작은 둥지로 힘겹게 날아올랐다.

 엄마 생각이 났다. 

 작은 인사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온 게 후회가 되었다.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떠오르는 바람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언제든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날아가렴.’


 나는 엄마가 있다. 날 쓰다듬어주던 엄마를 기억하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쓸쓸한 휴식을 마쳤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내 두터운 날개를 활짝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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