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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맑음 Sep 14. 2024

안 먹어 버릇

유맑음 동화#2

 “하여간 요즘 애들은 배고픈 걸 몰라.”


 할머니가 밥풀이 묻은 숟가락을 내저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자줏빛 앉은뱅이 탁자에는 청국장찌개, 멸치볶음, 달걀프라이 두 장이 올라있었다. 청국장은 냄새가 지독해서, 멸치볶음은 입천장을 자꾸 찔려서, 달걀프라이는 완숙이 아니어서 먹고 싶지 않았다. 밥은 심지어 쌀보다 까만 콩이 많았다.


 “할머니, 콩이 너무 많단 말이야.”

 “콩 많으면 좋지 뭘 그러냐? 것도 없어서 못 먹는 시절이 있었다. 허튼소리 말고 얼른 먹어.”

 “그만 먹을래. 배불러요.”

 “밥상머리에서 그리 깨작거리면 못쓴다! 줄 때 팍팍 먹어야지. 후딱 세 숟갈만 더 먹어.”


 방학식날 아침부터 혼이 났다. 엄마아빠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할머니의 핀잔을 듣는 시간이 늘었다. 오히려 학교 급식이 더 좋았다. 싫어하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까.


 달걀프라이 흰자만 몇 조각 집어먹고 학교에 왔다. 내 짝 세준이는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나눠준 흰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으, 세준아. 흰 우유 비리지 않아? 난 초코우유 아니면 못 먹겠던데.”

 “난 아무거나 다 좋아. 흰 우유는 안 가져가는 애들이 많아서 많이 먹을 수 있어.”


 세준이 입가에 허연 우유방울이 흥건했다. 왠지 속이 메스꺼웠다. 세준이는 우유팩 입구에 묻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후루룩 핥아먹었다. 요란한 소리에 주위에 앉은 몇몇 애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세준인 아랑곳하지 않고 아쉬운 입맛만 다셨다. 자꾸 내 옆자리로 눈길이 모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책상 서랍 뒤지는 척을 했다. 하필 어제 서랍을 모두 비워서 애먼 손만 허우적댔다. 다행히 한구석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이번 달 급식 표였다.


 “맞다. 오늘은 급식이 없지, 참.”

 “뭐? 오늘 급식 없다고?”

 옆에서 빈 우유팩을 접던 세준이가 놀란 토끼눈으로 내게 물었다.

 “응, 오늘 방학식이잖아. 3교시만 하고 끝날 걸?”

 “…….”

 세준이 얼굴에 금세 먹구름이 몰려왔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다 오른쪽 바지주머니를 꽉 움켜쥐었다.

 “너 괜찮아?”

 “…….”

 세준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지금 세준이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나야말로 점심으로 ‘할머니 잔소리’를 먹게 생겼으니까.


 짧은 수업과 단출한 방학식이 끝났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차츰 옅어졌다. 교실에는 나와 세준이만 남았다.

 “재호야. 넌 집에 안 가?”

 교실이 텅 비고 나서야 세준이는 입을 열었다.

 “집에 가면 또 점심 먹어야 하잖아. 매 끼니마다 정말 지겹다니까.”

 톡 쏘는 할머니 목소리를 떠올리자 눈앞이 아찔했다. 그런데 세준이 표정이 이상했다.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어째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세준아. 넌 언제 가?”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세준이는 대답도 않고, 가방을 조용히 둘러멨다. 그러고는 인사 한 마디 없이 교실을 나갔다.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식은땀이 났다. 이대로 헤어지면 방학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나는 얼른 가방을 챙겨 세준이 뒤를 따랐다.


 부지런히 따라왔지만 말도 걸지 못했다. 세준이의 무거운 그림자가 자꾸 나를 밀어냈다. 그러다 보니 녹슨 철제 지붕들이 늘어선 동네까지 왔다. 미로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세준이는 골목골목을 익숙하게 찾아 들어갔다.


 마침내 세준이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골목시장 앞 낡은 식당이었다. 나는 열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섰다. 세준이는 선뜻 들어가지도 않고 오른쪽 바지주머니만 만지작거렸다. 식당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세준이구나. 맨날 저녁에 오더니 오늘은 점심에 왔네?”

 아주머니가 세준이를 위아래로 연신 흘겨봤다. 미간을 찡그린 게, 썩 달갑지 않은 듯 보였다.

 “오늘 방학식이어서요. 급식이 안 나왔어요…….”

 “그래……? 음, 들어가서 잠깐 앉아있으렴. 오늘도 백반 하나지?”

 “네, 감사합니다…….”

 세준이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식당 옆 부동산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두 아주머니는 눈 마주치기가 무섭게 수다를 피우기 시작했다.

 “아니, 오늘도 또 왔어?”

 부동산 아주머니가 턱으로 세준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 말이. 새싹카드 가맹점 딱지라도 붙여놓으면 다들 좋게 본다더니, 개뿔. 애 혼자 먹고 있으면 들어올 사람도 안 들어온다니까. 장사 안 돼 죽겠는데.”

 새싹카드는 결식아동 급식카드다. 예전에 학교에서 신청서를 나누어준 적이 있다. 세준이는 그때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방학까지 했으니 이제 하루 두 번은 오겠네.”

 “아휴, 엄마아빠 없이 병든 노인네 밑에서 크는데 딱하긴 하다만……. 것도 한두 번이지.”

 아주머니들은 귓속말이라도 하듯 입가에 손바닥을 세워놓고 말했다. 그런데도 내가 숨은 담벼락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식당 안에 앉아있는 세준이가 들을까 조마조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이 앞에 따끈한 밥상이 차려졌다. 세준이는 우유를 벌컥 들이키던 속도로 입속에 밥을 쑤셔 넣었다. 도토리 삼킨 다람쥐처럼 볼이 불룩한 채로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오른쪽 바지주머니에서 녹색 카드 한 장을 주섬주섬 꺼냈다. 아주머니는 입 꼬리를 삐죽이며 카드를 받았다.


 세준이가 식당을 나와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나는 상체를 푹 숙여 몸을 숨겼다. 내 앞을 지나는 세준이 얼굴이 보였다. 온통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밥은 채 삼키지 못하고 가득 물고만 있었다. 가슴이 따끔거려서 더 이상 세준이를 좇을 수 없었다. 질퍽한 갯벌에 빠진 것처럼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세준이가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야 묵직해진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재호냐. 학교에서 점심 먹고 온 게냐?”

 “아니요. 친구랑 놀다 오느라고요.”

 “여태 점심도 안 먹었단 말이여?”

 할머니가 부리나케 부엌으로 향했다. 따끈한 밥과 소고기 미역국, 고등어조림, 콩자반이 오른 한상이 뚝딱 차려졌다.

 “가리지 말고 푹푹 떠먹어. 옛날 같았으면 꿈도 못 꾸는 밥상이란 말이다.”

 밥을 입에 욱여넣던 세준이가 떠올랐다. 세상 사람들이 세준이에게 먹지 말라고, 먹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나에게 먹으라고, 더 먹으라고 한다. 하루 세 번이나 공짜로 주면서, 눈치 한 번 주지 않고 말이다.


 나는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떠서 왕 물었다. 미끄덩거리는 미역국도, 가시가 많은 고등어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콩도 우걱우걱 입에 넣었다. 가슴이 턱턱 막혀오는 걸 밥으로 밀어내고 싶었다. 세준이처럼.


 “우리 강아지, 이렇게 잘 먹는 날도 있네! 얼마나 복스러운지 모른다.”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입에 밥을 가득 물고서 말했다.

 “할머니, 나 이렇게 잘 먹는 거 내 친구한테 배웠어. 세준이라고.”

 “그래? 재호한테 좋은 친구가 다 있구나. 언제 한번 데려 와라. 할미가 솜씨 발휘 좀 해야겠다.”

 “응. 그래서 말인데…….”

 “뭣을?”

 “방학 때 세준이도 우리 집에서 점심 같이 먹어도 돼? 친구랑 먹으면 더 맛있단 말이야.”

 “허허, 그러자꾸나. 재호 네 말이 맞다. 밥은 같이 먹어야 제 맛이지. 옛날엔 열댓 명이 한집에 옹기종기 모여 나눠먹었는데. 할미 솜씨가 세준이 입맛에 맞으면 좋겠구나.”

 “진짜? 역시 우리 할머니 최고야!”


 다음날, 나는 세준이와 헤어졌던 그 골목을 다시 찾았다. 휴대폰이 없는 세준이를 만나려면 식당 근처에 나타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삼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파리 날리는 식당 앞에 쭈뼛대는 뒷모습이 보였다. 세준이였다.


 “세준아!”

 “깜짝이야. 재호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아, 골목시장 찾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네. 밥 먹었어?”

 “아니, 아직…….”

 “잘 됐다! 우리 집 가서 같이 먹을래? 할머니랑 단둘이 먹으면 잔소리가 심하셔서 말이야.”

 “정말 그래도 돼……?”

 “당연하지!”

 세준이가 빙글 웃었다.  얼굴에도 덩달아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음 한편이 홀가분해진 거 같았다.


 우리는 함께 골목을 달렸다. 뜨끈한 할머니 표 갈비찜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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