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곧 생일이 다시 돌아온다. 생일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금주다. 그만큼 브런치북의 소재도 많아진다는 거였지. 매년에 한번씩은 누구나 돌아오는 생일일텐데 사람이라는게 정말 간사해서 괜히 생일이 껴있는 달이 오면 괜히 기분이 좋다. 그 달은 유난히 밝아보이고 오직 나를 위해 존재 하는것 같으며 어둠속에 해가 없어도 스스로 빛이나 보인다. 나에게 11월이 그랬다. 20대초에는 대학친구, 고등학교때 친구로 인간관계가 한정되어 있어 생일이 포함된 그 주에만 축하를 받고 끝내는 경우가 대다수 였다면 시간이 쌓이고 30대가 나에게 손을 흔드니 비로소 분기별로 한번, 반기별로 한번, 월에 한번 보는 모임이 더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11월 초부터 과분한 축하를 받게 되었다. 이런 점이 좋기도 하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기도 하다.
때는 20대 중반이었다. 그때도 카페에서, 월마다 모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에게 대뜸 질문이 들어왔다. "근데 너는 생일선물 뭐 받고 싶어?" 내 생일의 2주전이었다.
선물
충격이었다. 나에게 선물의 의미는 2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주는 사람이 나를 생각하며 준비해주었다는 그 마음과 내가 그 선물을 받으며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는 행복감. 그런 관점에서 봤을때 생일선물 뭐 받고 싶어? 라는 질문은 그 2가지의 조건에 상충하지 않는 질문이었으며 '뭘 달라고 해야하나?' 라는 생각자체를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 행위 자체가 내 생각에 생일을 빙자한 삥뜯기 밖에 안되기 때문에. 당연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 '집문서', '땅문서', '달문서' 정도로 둘러댔지만 당황하고 있는 나를 보며 한 친구가 위시리스트 라는걸 추천해 줬다.
위시리스트
ㅋ톡의 위시리스트, 이 기능을 몰랐던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위시리스트란 인생 버킷리스트같은 느낌으로 '인생에서 이것 한번쯤은 꼭 사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위시리스트에 몇십만원이 넘는, 그러나 꼭 필요한 빽팩 가방, 신발, 회충시계 같은 물품들을 정말 소중하게 선별해서 3~4개정도만 넣어놓았다. 그렇다고 그런 물품들이 누가 알아주거나 이름 있는 명품 브랜드도 아니었다. 정말 내가 죽기 전에 한번쯤 큰맘먹고 사서 착용해봐야겠다. 싶은 그런것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내 위시리스트에 걸려있을때쯤
한 친구가 위시리스트를 추천해줬고, 그렇게 위시리스트의 원래 기능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말한 위시리스트는 '이거 좋아. 이거 줘!'의 느낌이었다. 맞다. 나는 남들이 봤을때 몇십만원 하는 물품들을, 생일때 마다 달라고 한 셈이 된것이다. 정말 창피했고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바로 내 위시리스트를 싹다 내리고 정말 실용성이 있는 것들로, 그러나 3만원대가 안되는 저렴한 것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에겐 나만의 위시리스트의 원칙이 생겼다.
위시리스트의 원칙
첫째, 모든 위시리스트의 항목중에서 금액대가 5만원이 넘어가는 것들을 2개정도 포함시킨다.
이건 사달라는 용도는 아니고 다른 위시리스트의 항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보이는 효과를 내어 사주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배려다. 그러므로 만약...정말 만약에.. 이 항목을 사주는 사람이 온다면 나는 양해를 구하고 취소하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둘째, 첫째의 위시리스트의 항목을 제외한 다른 항목들의 금액은 3.5를 넘지 아니한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4만원이 넘어가면 부담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남 선물을 사는데 큰맘을 먹을 필요는 없으니 가볍게 사주는게 내가 생각하는 선물의 의미다.
셋째 : 웬만하면 1:1 선물을 원칙으로 한다.
이 세번째 규칙과 이유 때문에 첫번째 두번째 규칙을 만들었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 나에게 선물의 의미는 2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주는 사람이 나를 생각하며 준비해주었다는 그 마음과 내가 그 선물을 받으며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는 행복감이 중요하다. 첫번째 의미는 위시리스트 라는 프로그램에서 퇴색되었다고 하더라도 두번째 의미까지 퇴색시키고 싶진 않다. 여러사람이 돈을 모아 큰 선물을 사주면 내 입장에서는 두번째의 의미또한 퇴색되버린다. 선물 하나를 보고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그런 방식으로 ,2년전 지오에게 받은 파우치를 1년은 파우치로,1년은 지갑으로 쓰다가 올해에는 지갑을 바꾸며 장롱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넷째 : 생일 자체를 굳이 어필하지 않는다. 요즘엔 물어보지 않아도 당일에 생일 알람이 뜨기도 하고, 궁금하면 그런 주제가 나왔을 때, 적어놓거나 메모를 했을 것이다. 나에게 생일은 생일 자체를 자랑할만 것도 못되며, 연락한번도 없다가 결혼할때만 청첩장 내미는 그런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예외)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번째 규칙을 깨고 내가 먼저 생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그 사람은 내 관계 속에서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정말 더 귀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들은 높은 확률로 새로운 관계속에 만난 사람일 것이며, 생일선물을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아닌 그저 이들의 입에서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한마디를 듣고 싶은, 나의 작은 발버둥 일 것이다.
마치며
글을 쓰다보니 선물을 통해 그 사람을 떠올린다는게, 사랑이나 연민, 그리움 정도로 느껴지고 있는데 그정도까지는 아니다. 단지, '내 인생가운데 이런 소중한 사람이 있지' 를 떠올리기 위한 수단이 선물일 뿐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남들에게는 아무일도 아닌 평일이나 주말이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이름모를,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오늘이 생일인 그대에게 전한다.
" 오늘까지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고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의 주위에 인간관계라는 소중한 선물을 너무 당연시 하진 말아주시고 아껴 사용하셔요. 한번 고장나면 재구매나 환불, A/S 는 어려우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