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브런치를 음미하는 시간은 23시. 어느 장소에 있든 간에, 화요일 23시만 되면 핸드폰의 알람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어준다. 항상 전 회차의 글을 쓰고 난, 그 후의 일주일 동안에 다음 글을 쓸 소재가 생각나곤 했지만 이번 일주일은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배움에 대한 설렘과 곧 마감을 해야하는 작품활동이 나의 목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23시에 이자리에 앉아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하며 키보드와 하염없이 소통을 시도했다. 그러자 문득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취를 하고 있는 자취생이다. 2024년 여름 중순부터 보일러가 고장나 할수 없이 찬물샤워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얼음장 같은 추위가 내 정신을 뒤덮었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니 여름 특유의 끈적끈적함이 싹 씻겨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1월이 되었다. 이제 끈적끈적함의 계절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옷은 어느새 반팔의 소매가 길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일상을 위해 샤워를 하고 집을 나가려던 찰나,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렸다. 문앞의 인기척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 주인공은 가스검침 하시는 분. 아마 형쯤으로 보였다. 그분의 손에 두유 하나를 쥐어드리고 조심스레 여쭤보는 우리집 보일러의 상태. 전문가의 입장으로서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였나 보다. 그분이 가시고 나는 조금씩 왼쪽으로 샤워기의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다. 내 손을 통해 흐르는 물이 온기가 느껴진 적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분께 정말 감사했다. 그 후에 본가에 방문하여 동생에게 "우리집도 이제 따뜻한 물 나와!" 라고 자랑해보았지만 돌아오는건 당연한거라는 대답이었다.
감사
없던게 생기면 감사할 줄 모르지만, 있던게 없어지며 그 불편함을 알고, 불편함이 다시 편리함으로 바뀔때 우리는 비로소 감사함을 느낀다. 일상속에서의 감사가 얼마나 자주 나오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품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하루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는가.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거 부터 감사해야한다. 따듯한 물로 샤워하는 것. 옷과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할 수 있다는것. 외출의 목표가 있다는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브런치북을 보고, 연락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 정말 당연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의 존재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를 누구보다 편안히 살아간다.
성찰을 마치며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때, 자신은 한단계 성장한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의문을 품은 것 처럼 우리 근처의 당연한 것들을 한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