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성인남녀들을 며칠 동안 한 장소에 머물게 하며 오로지 자신에게 맞는 연인을 찾는데 몰두하게 만드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나는 종종 시청한다. 특히, <나는 솔로>나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이후 나솔사계로 표시)는 여타 프로그램에 비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출연하여 그 안에서 다채로운 관계적, 심리적 역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흥미롭다. 회차마다 ‘이번에는 프로그램 PD가 어떤 사회 실험을 실시할까’라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번 [나솔사계]는 기존 여성 출연자들과 TV 출연 경험이 없는 일반인 남성들로 구성되어 나에게 신선한 호기심을 일으켰다.
처음, 이번 <나솔사계 EP. 125>에서 25기 옥순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은 붙임 머리를 하고 나왔다, 아줌마 같다, 얼굴이 너무 각이 져 보인다 등등 외모를 공격하는 날 선 글들이 많았다. 그러다 이번 에피소드가 방송을 타고나서는 반응이 달라졌다. 주된 반응은 옥순이 달라졌다, 적극적인 태도에 빠져든다 등의 제목들로 호의적인 시선으로 변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우리는 참으로 가볍디가볍다. 흔히 심리학과 마케팅 분야에서는 “인간의 감각 정보 중 약 80%는 시각을 통해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시각적 정보는 우리가 외부 정보를 인식할 때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당연히, 이성을 판단할 때도 시각적 정보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우리 인간들에게는 그 밖의 다른 감각들이 존재하고 가치관과 사고, 취향 등도 함께 한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사람을 알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면에서 25기 옥순은 첫날 남자들의 선택에서 0표를 받았지만 ‘자신은 시간이 지나야 매력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하며 이성 관계에서 자신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이번 [나솔사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는 솔로] 25기에서도 비슷했다. 처음에 25기 옥순이 ‘옥순’이라는 타이틀로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후반으로 가면서 25기 옥순이 지닌 편안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화법, 그리고 반듯한 인성에 ‘옥며들’어 팬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나는 이번 [나솔사계]에서도 25기 옥순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터뷰에서 25기 옥순이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다고 마음가짐을 다졌지만, 이전 [나는 솔로]에서도 나는 25기 옥순이 수동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적극적’일 대상이 없었을 뿐이다.
관계는 늘 말하지만 상호적이다. 내가 적극적이고 싶어도 환경이나 대상이 여의치 않으면 애초의 다짐은 물거품이 된다. [나는 솔로]에서 25기 옥순은 영호와 광수의 선택을 받았지만, 옥순은 자신은 이곳에 연애가 아닌 결혼할 상대를 찾으러 나왔다고 하며, 밖에서의 실제 옥순과도 잘 맞는지 알아보고 싶다며 최종 선택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때 25기 옥순은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나솔사계] 25기 옥순은 보다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어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25기 옥순의 변신’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25기 옥순의 태도 변화도 물론 있겠지만 대상의 변화가 이 차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솔로]에서 25기 옥순이 데이트를 했던 대상인 영호와 광수를 살펴보자. 영호는 25기 옥순보다 나이가 어리고 약사라는 안정적인 직업도 있으며 성격도 반듯한 남자다. 하지만 25기 옥순의 눈에 영호는 좋은 사람이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덜 세련된 남성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툭탁거리는 걸음걸이나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직업과 능력을 떠나 아직 미숙하고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워낙 대화를 능숙하게 이어가고 상대를 배려하고 눈맞춤도 자연스러운 25기 옥순이지만 이를 남녀의 스파크가 느껴지는 분위기라고 느꼈을 가능성은 낮다.
이에 반해 광수는 나이가 옥순보다 많고 직업도 의사에 순수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자기몰두적인 특성이 강하여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이나 기술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서 사회화가 고도로 이루어진 25기 옥순조차도 대화가 힘들었다고 인터뷰를 하였다. 나 또한 옥순이 계속 질문을 해야만 이야기가 이어지는 데이트를 보며 놀랐었다. 더욱이 광수는 이성에게 바라는 점을 때로는 무례하게 느껴질 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 이후 상대와 그후 대화를 나누려는 의지도 기술도 부족하게 보여서 보는 내내 내가 다 답답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25기 옥순은 광수에게 하나씩 남녀가 만났을 때 대화하는 법을 참으로 부드럽고 인내심 있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이를 정리해 보면, 25기 옥순이 [나는 솔로]에서 만난 영호와 광수라는 남성은 옥순이 아무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그 방향성이 들어주고, 반응해 주고, 찬찬히 이끌어 주는 수용적인 조정자의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즉, 이성과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가진 미성숙함으로 인해 25기 옥순이 가진 여성성보다는 모성애적인 면을 더 발현해야 했다.
반면, [나솔사계]의 이번 남성 출연자들은 전반적으로 왕성한 사회적 경험과 활동을 이어온 온 사람들이다. 단단히 자신의 분야를 구축하며 살아왔고 오랜 직업적, 사회적 경험을 통해 대인관계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편이다. 즉, 환경인 대상이 달라졌다. 25기 옥순은 일반적인 여성이다.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대화를 맞춰주며 관계를 이어가고자 한다. 더욱이 이성의 외모가 1순위가 아니다. 그러한 면에서 미스터 윤은 옥순에게 최적의 대상일 수 있다. 옥순이 먼저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한 미스터 권도 비슷하다. 25기 옥순에게 이들은 옥순이 편안하게 앞에서 여자로서 존재해도 되는 성숙한 남자로 보인 것이다. 특히, 미스터 윤은 남녀 상관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편안하고, 항상 웃고 있는 얼굴표정을 보이며, 말씨도 곱다. 이성적 매력을 떠나 앞에 있으면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25기 옥순이 미스터 윤 앞에서 여성으로서 적극적인 매력을 귀엽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대상인 미스터 윤의 성숙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25기 옥순은 마음가짐도 달리하고 나왔지만, 자신의 여성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을 만났기 때문에 쑥스러워하면서도 귀엽게 생글거리며 적극적이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의 표정과 태도, 눈빛과 같은 비언어적인 메시지가 서로에게 얼마나 달달한지 알 수 있다. 만약 이번에도 직업은 좋으나 사회적인 애티튜드가 미숙한 남성들을 만났다면, 아무리 25기 옥순이 결의를 다지고 나왔다고 하더라도 고행의 길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서로가 준비되었을 때 서로의 가치를 알아본다.
대학생일 때 친구의 소개로 S대 다니는 남자와 대학로에서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무슨 과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S대생인데 키도 크다며 소개팅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나는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나갔다. S대생 소개팅남은 정말 말대로 키가 컸다. 그뿐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 두 살 많았지만 정말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리포터인 줄 알았다. 나도 엄청난 내향인이고 대인관계가 항상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이 소개팅남은 도대체 여기에 왜 나와 앉아있나 싶었다. 정말 표정이나 몸짓이 어색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눈 마주침도 제대로 못하여 불편해하는 것이 너무도 여실해 보였다. 태어나서 한 일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었나 싶을 정도였다. 친구를 엄청 속으로 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로도 처음 와봐서 아는 곳이 없다고 하여, 내가 자주 가던 음식점으로 데려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소개팅남은 저녁식사를 할 거라 생각을 미처 못해서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순간 그 당시 소문으로만 듣던 ‘차비만 들고 나온다는 S대 소개팅남’인가 싶어 화가 났지만, 지금까지 내 앞에서 보인 소개팅남의 태도는 참으로 불쌍할 만큼 어찌할 바를 몰라해서 그냥 적선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날 나는 소개팅남과의 저녁 식사값도 계산하고 음식점에서 집으로 가는 법을 모른다고 하여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었다. 관계는 한 사람이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도 예쁘게 옷 입고 가서 한껏 여성성을 발현하고 싶었지만 결국 밥 먹이고 지하철역에서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25기 옥순도 미스터 윤을 만나 다리를 뻗을 수 있겠다 싶으니 한껏 여성미를 발산한 것이라 본다. 또한 그러한 모습을 미스터 윤은 ‘좋아요’, ‘좋다’라는 말로 계속 받아주고, 응원해 주고, 이쁘다고 표현하니, 25기 옥순은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너무 섣부른 기대이지만, 나는 이 커플이 서로 안에 잠재된 엄청난 보석들을 발현시켜 주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접었던 다리를 쭉 뻗어 자신들의 숨겨진 이성으로서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고 만끽하는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참 보기 좋은 성숙된 연인을 본 것 같아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