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만든 로맨스의 타이밍
넷플릭스의 <KPOP 데몬 헌터스Demon Hunters>(이후 케데헌 표기)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다. 6월 개봉 이후 가장 많이 시청된 애니메이션 영화로 기록되었고, 빌보드나 스포티파이에서 "Golden", "Your Idol" 등의 OST 수록곡들이 상위에 랭크되었다. 전 세계적인 인기만큼 틱톡이나 유튜브 등에는 음악이나 춤을 커버하는 영상들이 속속 업로드되고, 입소문을 타며 기존의 K-POP 팬덤을 넘어서 K-POP이 낯선 외국인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제목의 유치함으로 인해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막상 보기 시작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웰메이드 된 영화에 매료되어 이미 헌트릭스Huntr/x와 사자 보이즈SAJA BOYS의 팬이 되어버렸다.
케데헌을 보고 난 후, 여운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유튜브에서 리액션 영상들을 몇 편 시청하다 보니 예상치 않은 리액터들의 반응에 나는 좀 당황했다. 주인공인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Rumi가 사자 보이즈의 리더 진우Jinu와 "프리Free"라는 듀엣곡을 함께 부르며 손을 잡고 아름답게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새벽녘의 몽환적인 보랏빛 하늘을 두 사람은 처음으로 손을 잡고 비상하며 서로를 바라보았고, "프리Free"의 아름다우면서도 절실한 멜로디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처음 케데헌을 봤을 때처럼 그 장면에 흠뻑 빠져서 두 사람의 애처로움에 몰입해 있는데, 갑자기 외국의 리액터들이 "Kiss, Kiss", "Come on, this is the moment"라는 반응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엥?' 하며 의아했다. 어떤 리액터는 둘이 듀엣을 부르는 순간부터 Kiss타령을 시작했고, 다른 리액터는 둘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날아오르자 '여기서도 키스하지 않으면 화낼 거야.'라는 말했다. 마지막에 루미와 진우가 다시 현실로 내려와 두 손을 잡고 서로 마주 보며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끝내고 그냥 헤어지자, 몇몇 리액터들은 키스 모먼트Kiss Moment 놓친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에 루미와 진우 사이에 더 깊은 로맨스가 있고 키스신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그 장면이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영화에서 잘라냈다고 밝혔다. 또한 두 사람의 키스신이 삭제된 이유를 물어보는 팬에게 Maggie Kang 감독은 "자제력이 더 섹시해요The restraint is sexier."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니, 스탭이 공개한 시놉시스에 키스 장면이 있었고 이를 본 팬들은 아쉬운 마음에 루미와 진우의 키스 모먼트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키스 모먼트 영상이나 이미지를 보면서, 왜 외국의 리액터들은 이 장면을 키스 모먼트로 인식할까 궁금했다. 물론 한국의 시청자들도 이 장면에서 키스한다고 난리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외국 리액터들이 다 이 순간에 키스하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키스신을 보면서 뭔가 전반적인 흐름에서 나는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키스 모먼트Kiss moment에 대한 맥락적, 문화적 차이의 인식에 대해 궁금해졌다.
먼저, 케데헌의 Free 수록곡 장면을 살펴보자. 데몬과 헌터 사이에서 태어난 루미는 혼문을 지키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데몬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평생 숨기며 살아야 하는 아픔이 있다. 진우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마인 귀마와 거래를 하고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서 궁궐에서 호의호식을 했던 자신의 선택을 증오하는 데몬이다. 이 둘은 데몬의 패턴을 가지고 있고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으며, 이 패턴에서, 즉 데몬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진우는 이미 귀마에게 점령당하여 벗어나기를 포기한 상태였고, 루미는 혼문을 금빛으로 완성하여 자신의 몸에 새겨진 패턴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마음에 조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미는 점점 패턴이 몸에 퍼지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는데, 진우와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자신의 목소리가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진우 또한 자신은 무력한 상태로 살았는데 루미를 만나며 다시금 귀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기 시작한다. 이것이 Free노래 가사의 큰 틀을 이루는 내용이다. 그래서 가사 후렴구에서도 "We could be free, free. We can't fix it if we never face it"라고,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직면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고, 함께 해보자고 서로를 독려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미와 진우의 정서적 친밀감은 점차 높아졌다. 하지만 이것을 한국의 정서에서는 '로맨스'라고 일반적으로 부르기는 어렵다. 영화에서 이 둘의 데이트(?) 장면은 두 번 등장했고, 생략을 했다고 하더라도, 애초의 '적대적 관계'에서 "동질감"이나 "동지애"로의 발전으로 읽힌다. 따라서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이성 간의 화학적 반응, 즉 케미스트리chemistry가 좀 부족하다. 이제야 서로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의향을 떠보고 확인하는 '썸'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진우가 루미와 함께 귀마를 무찌르고 이후 진우와 루미가 서로를 웃으며 쳐다보았다면, 아마 오늘부터 '1일'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이전의 스토리 맥락 상, 비슷한 고통을 가지고 있고 함께 치유해 가자는 동질감과 정서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 동료애와 썸의 그 언저리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키스를 해야 한다는 외국의 리액터들의 반응에 의아해했던 것 같다.
그럼 서양과 한국의 키스 모먼트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서양에서 키스는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훨씬 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며, 좋아하면 더 쉽게 키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키스의 공개성과 일상성과 함께 키스는 '연애의 시작'을 공식화하는 상징성을 가진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키스 후에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은 물론 지금은 훨씬 더 자유로워졌지만, 서양에 비해 좀 더 특별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비공개적인 행동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키스는 남녀 간의 특별한 순간에 나타나는 '관계의 전환점'의 역할을 주로 하기 때문에 썸을 타다가 키스 후에 연인관계로 이어지거나, 연인이어도 관계가 더 깊어질 때 키스 장면이 등장한다. 특히나, 영화나 드라마 상에서 손을 잡고, 안아주는 일상적 애정 표현보다 스토리의 절정의 순간, 서로의 애정에 대한 확신의 순간에 주로 키스신이 활용된다.
이러한 키스 모먼트에 대한 일반적인 문화적 차이로 인해, K-Drama나 케데헌을 보는 외국 리액터들은 키스신에 대해 더 감질나고 안달나한다. 몇몇 시청자들은 루미와 진우의 키스신 삭제 관련 영상에 "한국 드라마에서는 30회까지 주인공들이 키스를 하지 않는다'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렇게 답답해하면서도 30회까지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것은, 이것이 Maggie Kang 감독이 말하는 "자제력이 더 섹시"하다는 말의 숨은 힘이지 않을까 싶다. 케데헌 팬들의 루미와 진우 커플에 대한 진한 아쉬움은 팬픽과 팬편집으로 이어져 또 다른 세계관을 만들고 있다. 필자도 팬들이 업로드한 커플의 데이트, 결혼 영상 등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마, 필자도 Free장면이 개인적으로는 키스 모먼트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영화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허니문카를 타고 달리는 루미와 진우를 말이다.
케데헌을 보신 독자 여러분은 어떤가요? Free 장면이 키스 모먼트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