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불안이 만든 교육열
TV에서 영어 교육 관련 뉴스가 나오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러다 얼마 전 '7세 고시'에 이어 '4세 고시'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참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 나라 사회나 이러한 집단들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나는 한국이 유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을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 한국은 아직 대단히 개방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의 조기 교육과 관련된 부모의 심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적으로 상류층은 자녀 교육을 통해 계급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영국의 이튼(Eton) 같은 기숙학교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아이들이 10세 전후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엘리트 교육을 받는 전통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과 네트워크를 계승하는 통로였다. 그리고 이튼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은 7세부터 프렙 스쿨에 다니며 기초 학문과 다양한 훈련을 받았다. 일본 역시 게이오 학원이 유치원에서 초중등, 고등, 대학까지 연결되어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는 별도의 입시 없이 자동으로 승급되는 구조라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상 대학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이유로 유치원 입시가 치열한 것으로 유명하다.
필리핀에는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이 있는데, 이는 공립 명문대학인 UP대학에 비해 부유층과 정치 명문가 자녀들이 다니는 대학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이곳을 졸업했다. 아테네오 대학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운영되지만 게이오처럼 자동으로 승급되는 시스템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가 예전에 아테네오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도 깔끔하게 정돈된 캠퍼스와 스포츠카들, 키가 큰 백인계 혼혈들이 많아서 여기가 필리핀이 맞나 싶었었다.
이에 반해, 한국에는 공식적으로 10세 이전에 아이를 기숙사에 보내는 제도화된 엘리트 학교 전통은 없다. 대신 그 역할을 사교육 시장이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유치원, 국제학교, 조기유학 등이 사실상 ‘보딩스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른바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현상은 단순한 교육열을 넘어, 세계적으로 존재해 온 엘리트 교육의 욕망이 한국에서는 사교육을 통해 표출되는 독특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부모들의 불안과 계급적 욕망이 아이들의 교육 선택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영국·일본·필리핀과 한국의 현상은 서로 다른 형태를 띠지만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이러한 점에서는 계급적이고 폐쇄적인 이튼, 게이오, 아테네오 보다는 아직은 개방적이고 덜 계급적인 한국의 교육 현장이 조금은 더 낫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욱이, 뉴스에 등장하는 '4세 고시'나 '7세 고시'에 동원되는 극성인 학부모는 전체에서 일부라고 믿는다. 그래도 우리가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바로 이러한 부모의 욕망에 의해 간과되는 아이들의 인지와 정서발달이다. 외국의 보딩 스쿨이든 한국의 사교육이든 이에 대한 욕구는 모두 부모의 불안에서 왔다. 아이에게 양질의 네트워크를 마련해 주고 엘리트 교육을 받게 하고픈 부모의 욕구로 인해, 아이의 인지발달은 무시되고, 정서 발달이 지체되며, 엘리트주의를 기반으로 한 위계적 문화와 정서가 일찍 내재화된다.
발달심리학에서 피아제의 발달단계에 따르면 4세~7세는 전조작기(약 2세~7세)에 해당한다. 전조작기의 아이는 신체적으로 뛰고 오르고 달릴 때 균형 감각이 발달하고, 손가락 사용이 능숙해져 가위질을 하고 신발끈도 묶을 수 있게 되며 활동량이 증가한다. 인지적으로 이제는 눈에 보이는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상징화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나무 막대기를 칼이라고 부르며 놀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기중심성(egocentrism)이 강하여 아직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자기가 본 것은 타인도 봤다고 생각한다. 전두엽이 발달 중이라 논리적 사고가 어려워 보이는 대로 믿으며, 이제야 어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정서적으로는 '나'라는 개념이 발달하고 혼자 하려 하며, 상상력이 발달하여 쉽게 공포와 두려움을 겪지만 정서조절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쉽게 화내고 울게 된다. 가족과 또래와의 관계 속에 타인에 대해 이해가 발달하고 애착 대상도 확장하게 된다.
아이에 따라 발달 정도에는 개인차가 존재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조작기 아이는 이러한 발달양상을 보이게 된다. 전조작기에 대한 설명만 들어도, 여러분은 4세 고시가 얼마나 아이에게 폭력적인 일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뉴스를 봤을 때, 유명 영어유치원에 들어가는 입학 고사에는 엄청난 영어 어휘력과 추론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모국어의 어휘도 부족한 아이가 영어 스펠링을 암기하고, 단어 뜻을 억지로 머리에 구겨 넣는다. 더욱이 추론 문제를 보고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났다. '추론'이라는 사고작용은 발달 단계에서 약 11세부터 시작되어 13세(형식적 조작기)에 뚜렷해진다. 물론, 아이가 머리가 좋아 더 일찍 추론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4세와 7세는 아니다.
나는 영어유치원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형태의 영어 유치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일률적으로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뉴스에 등장한 것처럼, 엄청난 어휘를 암기시키고 추론 문제를 풀리고 아이를 장시간 한 자리에 앉혀서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게 하는 주입식 학습 과정은 분명 아이의 발달단계를 무시한 폭력이자 학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부모의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돈으로 먼저 부모가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의 미해결된 과제를 살펴보자. 이를 경쟁적인 사회 탓으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말로 남탓하지 말자. 감정은 메마르고, 관계는 위계적이고, 머리만 커진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 하지만 머리는 AI를 절대 이기지 못할 텐데 어쩔것인가. 자신의 욕구를 아이에게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한 번만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의 출발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