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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Sep 16. 2019

내 우울함의 원인

친정집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와 달리 나는 집에 있을 때 우울한 편이다. 한 번도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갑자기 내가 우울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시댁과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지금은 아주 멀리 살다 보니 시댁 때문에 속상할 일은 그다지 없다. 그런데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친정이었다. 


친정아버지가 술병이 나서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서 엄마는 다른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7남매에 오십이 넘은 여자가 집에 데려온 남자는 그다지 별 볼 일 없었다. 나이 많고 고집 세고 모아둔 돈도 한 푼 없는 그런 남자였다. 엄마는 그 남자와 몇 년을 같이 지낸 후, 결국 성격 차이로 헤어졌지만 다시 혼자가 돼서 얼마 지나지 않아 뇌출혈로 영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자그마치 16년이 지나도록.


오빠 중 한 명은 어릴 적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후에 그 후유증으로 대인관계를 회피했다. 간신히 온라인 채팅으로 만난 올케 언니와 결혼해서 애도 둘 낳았지만, 학교도 일도 오래 꾸준히 하지 못했다. 오빠가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긴 후에도 일터에서 보다는 집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몇 해 전 설날을 며칠 앞두고 오빠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설날 연휴에 주검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가끔 친구를 만나러 친정집이 있는 도시에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오빠를 마지막으로 보낸 장례식장을 지나친다. 설날 연휴에 입석 기차를 타고 밤 중에 갔던 어두컴컴한 그 건물 앞을.


내 밑으로 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동생 또한 죽은 오빠처럼 학교도 일도 오래 하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에 받았던 피해보상금은 다 탕진하고, 지금은 여러 가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직장생활은 포기한 듯하다. 그나마 직장이 있는 여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어 다행이다. 큰오빠와 내가 오랜 시간 동안 동생에게 생활 보조비를 보냈었는데, 나는 은행 융자와 아들 대학 수업료를 대려면 이제 동생에게 돈을 그만 보내야 한다. 


그리고 내 위로 언니들이 셋이나 있다. 그나마 제일 큰 언니는 나와 배다른 자매지만 제일 마음이 잘 통하고 배울 점이 많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내가 어려운 형편에 포기하지 않고 대학 공부를 했다는 이유로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멀리 살기 때문에 얼굴 볼 일도 자주 없지만,  가끔 대화를 하거나 만나게 되면 항상 그런 이유로 다투게 된다. 없는 살림에 장남이 공부할 때는 도와주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내가 대학 갈 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서는 내가 잘되는 것이 그렇게 시샘이 나나 보다. 


주위에 가족들이 많은 집은 형제들 사이에 참 살뜰히 챙기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어서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의지할 친정 부모도 형제도 없다. 하나같이 다 나의 시간이나 노력이나 돈이 필요한 사람들뿐이다. 그래도 가끔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안부도 물어보고, 아이들에게 용돈도 조금씩 보내주는 배 다른 큰언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언니마저 없었다면 나는 철저히 외로우리라. 


나를 우울하게 하는 친정 생각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동생에게 생활비도 그만 보내야겠고, 샘 많고 허영심 많은 언니들 둘하고는 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아야지. 동생들을 부담스러워하는 큰오빠한테도 연락하지 말고 엄마 또한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말아야지. 나는 나의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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