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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22. 2022

낯선 번호로 <어떻게 지내시냐>는 문자가 왔다

하던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해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 회사 건물이 텅텅 빈 이후에야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시동을 걸기 전에 잠깐 문자 확인을 했다. 낯선 번호로 <어떻게 지내세요?>로 시작하는 문자가 왔다. 이름을 저장해 놓지 않은 번호로 그런 문자를 보낸 사람이 예측 건데 이전에 살던 아파트 주민인 듯했다. 문자를 읽고 번호를 차단시켰다. 꼭 그 사람에게 무슨 나쁜 감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 동네를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깨어 거실 보일러를 켜고 한참을 누워 있다가 다시 눈을 뜨니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제일 먼저 보인 것이 바로 옆에 있는 해피트리였다. 그리고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거실 바닥에 누워서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 요즘 들어 종종 어릴 적처럼 따뜻한 바닥에 등을 대고 자는 것이 좋다. 특히 몸이 좀 좋지 않은 날은.   남편은 내가 잠들기 전까지 옆에서 누웠다가 안방 침대로 간 모양이다.


전날 문자를 보낸 사람은 왜 보냈을까? 나와 굳이 연락을 하고 지낼 사이는 아닌데 말이다. 그 문자에 <덕분에 잘 지냅니다. 소음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전망도 너무 좋아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살짝 아쉽습니다.>라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어색하고, 나의 근황을 보고해야 할 의무는 더더욱 없고, 무엇보다도 그곳은 정말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역겨운 곳이다. 그곳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은 더더욱 싫다.


처음 그곳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부담 없는 가격 때문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위아래 양 옆 사방으로 둘러 쌓인 그곳에서 매 순간을 소음에 시달린 기억은 나에게 트라마로 남았다. 특히 밖에서는 점잔 빼면서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던 윗집 부부와 그 집 망나니 아들과 망나니 아들의 초년기를 연상시키는 그 집 손자. 아, 그 더러운 기억을 지워 버리는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좋지 않은 기억을 소환한 것은 낯선 번호로 온 문자 하나였다. 처음에는 낯선 번호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사 후 어느 시점에 내가 연락처를 지워 버렸을 것이다. 연락처를 지워 버리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답을 하는 대신 아예 수신 차단을 했다. 나의 행복이나 불행을 그 사람에게 보고할 의무는 나에게 없고, 그 사람 역시 자신의 가벼운 친절로 타인의 무거운 상처를 들춰낼 권리는 없다.


거실 창가에 놓인 새싹 재배기에 여러 종류의 새싹이 머리를 힘껏 들고 있다. 그 뒤에 놓인 아담한 콩나물 재배기의 뚜껑을 열면 귀여운 콩나물들이 나를 반길 것이다. 어젯밤 식탁 위에 둔 작은 화분들은 밤새 잘 지냈을까 궁금하다. 남편이 깔아 준 이불들을 개고, 아침 운동을 할 시간이다. 그리고는 의사가 회진을 하듯이 나도 집 곳곳에 놓인 식물들을 둘러보며 물을 줘야겠다. 식물들은 사실 나의 환자들이라기보다는 나의 의사들이다.


이사 후 반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고, 나의 삶의 질은 상당히 향상되었지만, 그렇다고 실내에 국한된 생활이 많이 바뀌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집과 회사를 오가며 순도 백 프로의 실내 생활을 하고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 또한 여전히 나를 숨 막히게 한다. 하지만 이제 지독한 소음에서 생활하지 않음에 감사하고, 불쾌한 일 때문에 불필요하게 타인을 만나지 않아도 됨에 감사한다. 나 자신 또한 종종 <지속할 수 없는 친절>의 가해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지속 불가능한 친절을 줄여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내 맘 편하자고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미 친절이 아니라 불친절인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착각 속에 살고 있다:

1. 내가 뛰어나다는 착각

2.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된다는 착각

3. 내가 없으면  가족이 못 살 거라는 착각

4. 내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착각

5. 나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착각

6.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착각

7. 내가 남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

8.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

9. 내가 남을 도왔다는 착각

10. 내 존재가 의미 있다는 착각


정말 그럴까? 판단과 평가는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며 나의 존재는 나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지만) 나는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평범한 꽃과 가깝고 싶다. 나는 나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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