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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y 05. 2019

주말여행

서울에서 보낸 하루

이번 주는 정말 힘든 한 주였다. 직장에서 일주일 내에 "마지막 순간"에 결정된 큰 사안을 세 개나 처리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이는 생일 맞은 친구네에 가고 나는 토요일 아침 도망치듯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명분은 며칠 전 생일이었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지만, 친구 생일을 챙긴다기보다는 최근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현실도피형 여행이었다. 새벽 열차를 타기 위해 네 시에 일어나 전날 밤 싱크대에 그대로 둔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모았다. 아이가 집에 없어서 강아지 똥오줌 당번은 내가 되었다. 한 시간 가량 여기저기 집 청소를 하고 방에서 채비를 했다. 기차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나가려고 하니 그새 강아지가 쓰레기봉투를 물고 와서 거실에 쓰레기를 흩어 놓았다. 순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쓰레기를 다시 주워 담고 종량제 봉투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택시가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분 이내에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그 택시의 첫 손님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교통도 수월했다. 기차역에 일찍 도착해서 표지판에 나와있던 9번 승강장으로 갔다. 계단을 내려가서 보니 내가 타야 할 1호차는 반대쪽 끝이었다. 내 앞에서 어떤 노부부가 서울행 30분 출발 기차를 찾으시길래 9번 승강장에 들어 올 기차는 40분 출발 기차라고 말씀드렸다. 30분 출발 기차의 승강장이 어딘지 알 수가 없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전기를 들고 있는 직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아까 어렴풋이 보였던 직원은 온데간데없고 곧 안내 방송이 나왔다. 30분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노부부에게 달려가서 11번 승강장에서 들어오고 있는 저 열차가 30분 열차라고 말씀드렸다. 9번 승강장과 11번 승강장 사이에는 철로가 두 개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에스컬레이트를 가리키며, "저 쪽으로 올라가시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철로 안으로 들어가시면서 할머니께 "빨리 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서 "안돼요..."라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철로를 받치고 있는 자갈밭으로 들어가서 돌 밟는 소리를 내며 걷고 계셨다. 할머니도 몇 초간의 망설임 끝에 철로를 건너셨다. 나의 친절이 노부부에게 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초조한 마음으로 철로를 건너고 계신 노부부를 바라보자 저쪽에 무전기를 든 철도 직원은 애써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순간 철도 안전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 직원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안전 불감증>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이내 몇 주 전 내가 급한 마음에 열차표 없이 SRT 기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벌금을 내고 열차표를 끊기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직원을 기다리고 있던 날 늦게 도착한 젊은 남자가 닫힌 문을 두드리며 절망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늦게 도착해서 기차를 놓쳐버린 그 사람보다는 많은 벌금을 내고서 라도 열차표를 살 수 있는 내 처지가 낫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었다.) 나는 다시 40분 출발 기차의 1호차에 오르기 위해 걸어가다가 11번 승강장에 멈춰 선 30분 출발 기차 안에서 아까 철로를 건널 때보다는 조금 여유롭게 걷고 있는 노부부를 보았다. 결과적으로 노부부는 기차에 무사히 올랐고 정해진 시간에 서울에 도착할 것이었다. 


결과가 좋으면 내 친절이 상대방에게 불행을 초래할 수 있었던 것도 용서되는 것인지 그리고 철도 직원의 안전수칙 불이행도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노부부는 기차를 무사히 탔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계속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1호차 안에 들어서자 아무도 없었다. 출발 5분경에 몇몇 사람들이 탑승했다. 건너편 가족석에 3인 가족이 탔다. 내 나이 정도 들어 보이는 부부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남자가 역방향으로 앉더니 이내 아내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정말 매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갑자기 그 남자의 아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잠시 후 내 옆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가 앉았다. 내가 복도 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이 창가 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비껴준 것 말고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미 도착해서 기차역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기차에서 잽싸게 내려서 계단 위로 올라갔다. 앞에는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나란히 올라가고 있었다. 여자는 바퀴 달린 빨간색 여행 가방을 들고 계단 위를 오르고 있어서 '아마 둘이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단을 다 오르더니 둘이 손을 잡고 걸었다. (여자 친구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지 않는 남자도 매력 없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끙끙대고 옮긴 그 여자도 어쩐지 한심해 보였다.) 약속한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 역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우리는 서울역에서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쇼핑도 하고 만두도 사 먹었다.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실 배가 너무 불렀지만 친구는 만두를 꼭 먹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다음 우리는 명동 지하상가에서 연예인 굿즈며 다른 선물하기 좋은 물건들을 이것저것 골랐다. (다음 주 학교에서 K-Pop 대회를 할 때 관객들에게 추첨을 통해 줄 선물들이다.) 그런 후에 우리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사진을 찍으러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은 집회하는 사람들로 너무 붐비고 시끄러웠다. 샛길로 돌아 광화문 광장 뒤쪽으로 가니 제18회 대한민국 서당문화 한마당이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사운드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는 전통 악기들 소리에 이끌려 갔는데 얼마 안 돼서 연주자들이 한 명씩 무대에서 내려가더니 무대 뒤로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행사장에 설치된 어떤 부스에서 붓글씨 쓰기를 했다. 그리고 곧 행사가 시작되어 객석에 가서 앉았지만 아무래도 행사가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휴대폰을 놓고 가버려서 안내센터에 갖다 주자 휴대폰 주인이 곧 나타나서 안내 센터에 있다고 말해 준 사건 말고는 참 지루한 시간이었다. 친구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고 누군가 놓고 간 프로그램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국악 공연은 두 시간 뒤에나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그곳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그래서 우리는 광화문 광장을 빠져나와 덕수궁 돌담길 근처로 들어갔다. 늦은 점심을 먹고 돌담길을 걸었다.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대학시절 서울에서 지냈고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왜 덕수궁 돌담길을 걸은 기억이 없지, 그리고 왜 덕수궁 돌담길도 걷지 않았는데 사귀던 남자 친구와는 헤어졌지'라는 쓸 데 없는 생각을 했다. 


덕수궁 돌담길 걷기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서울역으로 걸어갔다. 서울 지하철역 빵집에서 한 시간 가량 수다를 떤 후에 작별인사를 하고 친구는 지하철을 타러 그리고 나는 기차를 타러 갔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아이는 벌써 자고 있었다. 아이도 친구 생일 파티에서 전날 밤늦게까지 놀다가 오늘 수영도 하고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나도 빨리 씻고 침대에 누웠다. 그다음 날은 어린이 날이라 아이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면 잠을 푹 자 둬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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