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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y 15. 2019

스승의 날

고등학교 선생님

예전 학창 시절 스승의 날에 전교생 조례를 하고 선생님들이 각 반 학생들 앞에 서 계시면 학생들이 선생님들께 꽃과 선물을 드린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에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딱히 스승의 날이 없고 교사 감사 주간이란 게 있다. 그나마 초등학생들에게는 일주일 동안 선생님께 카드 쓰기, 꽃 드리기, 선물드리기 등 요일별 이벤트를 하지만 중고등 학생들은 특별히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 작년 여름 데리고 온 강아지 생일이 5월 15일이다. 하필이면 세종대왕님의 생신에 태어난 강아지가 얄밉다. 계속 강아지 생일날이 스승의 날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을 하다가 까먹고 말았다. 점심시간 전 수업 시간에 무슨 말끝에 스승의 날이 나와서 그제야 고등학교 선생님께 안부 인사를 못 드렸다는 걸 기억했다. 채 30분도 안 되는 점심시간 동안 나는 밥을 후다닥 먹고 (밥을 까먹고 안 가지고 가서 반찬만 먹었다.) 휴대폰을 들고 학생식당으로 갔다. 교실에서 신호가 안 잡혀서 학교에서 전화기를 쓰려면 매번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 오늘따라 학생 식당에서도 신호가 안 잡혀서 저학년들이 있는 이층으로 갔다.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지금은 같은 재단 중학교에서 근무 중이신 고등학교 선생님께 메시지를 드렸다. 그리고 작은 선물도 보내 드렸다. 작년에 고등학교 동창과 같이 찾아뵙고 선생님과 삼겹살을 먹으며 맥주를 마셨는데, 선생님과 같이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 참 이상했다. 올해도 찾아뵙고 싶었는데 작년에 같이 갔던 친구가 최근 자꾸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에 근무 중이신 다른 선생님께도 문자와 작은 선물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는 지난 가을 명퇴를 하셨다고 한다. 


퇴근을 하고 식재료를 사서 집에 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선생님 중의 한 분이 문자와 선물을 보내주셨다. "선생님, 스승의 날에 제자에게 선물을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너도 다른 아이들의 스승이잖아."라고 답을 해 주셨다. 직접 찾아뵙지도 못하고 온라인으로 선물 보낸 제자에게 선생님께서 그렇게 맘을 써 주시니 민망했다. 사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졸업생들과 그렇게 긴밀한 유대가 없다. 학생들 중에는 처음 학교를 시작한 이후 졸업을 하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졸업 후에 연락되는 학생들도 드물다. 특히 최근에는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교사들과 학생들과의 학교 밖에서의 접촉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편지와 카드 등을 받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때 가끔씩 직접 만든 쿠키를 가져오거나 한국 명절에 작은 선물을 해주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한국에서는 <스승의 날> 단 하루 만이라도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날이 있다는 것이 사실 부럽기도 하다.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하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기다릴 필요 없이 다 가질 수 있는 지금의 아이들은 <감사>라는 것을 잘 모른다. 지난 주말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갔을 때에도 "잘 먹었습니다" 또는 "고맙습니다"하고 말한 학생이 아무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Thank you!"를 습관처럼 듣고 말하는 문화권에서 자란 학생들인데도 말이다. 가끔 '우리 세대는 물질적 풍요로 다음 세대를 망쳐놓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어버이의 날>과 <스승의 날>처럼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뜻깊은 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떠나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같은 자리를 지켜 주신 선생님들께 참 감사하다. 내가 졸업한 학교의 이름은 몇 차례 바뀌었고 학교도 더 이상 여고가 아니고 남녀 공학이 되었지만 나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 우리가 떠난 후에도 그곳을 오래 지켜주셨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고마운 선생님들께 "저희를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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