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프 Aug 07. 2018

'비 오는 날 장독 덮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월요일. (자정이 넘었으니 화요일이 되었지만, 내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오늘을 아직 월요일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주 5일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월요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일주일의 시작을 일요일로 표시해놓은 달력을 선호하지만, 그래도 내심 일주일의 시작은 월요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월요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일주일 중 월요일 딱 하루, 페스코 채식을 실천하면서부터다.

 페스코 채식은 육류를 섭취하지 않되 해산물이나 동물의 알 등은 섭취하는 채식의 방식 중 하나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딱 하루만 채식을 하면서 왜 '완벽한' 채식을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채식의 여러 층위를 무시한 채 왜 '완벽한'이라고 표현했냐면, 솔직히 말해 저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대개 비거니즘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그렇다. 나도 비거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 공장식 축산이나 환경에 관해 이야기할 만큼의 지식을 갖추고 있지도 않고,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는, 알기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페미니즘이 그렇고, 비거니즘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다. 여전히 카페에서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마시지만 두유 옵션이 있다면 꼭 두유로 변경하고, 여전히 고기를 좋아하고 잘 먹지만 일주일에 딱 하루는 육류를 전혀 먹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네 시간쯤 머무르며 세 시간 반 조금 안 되게 공부를 했다. 월요일부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괜히 뿌듯해하고 있는데, 공부하던 책에서 '비 오는 날 장독 덮었다'라는 속담을 봤다. 비 오는 날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장독 덮는 일을 했다고 자랑한다는 뜻으로,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유세하는 경우를 말하는 거라고 했다. 딱 내 꼴이라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200분이나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본어 공부도 조금 더 했다고, 점심으로는 비빔국수를, 저녁으로는 각종 채소와 새우를 구워 먹으며 페스코 식단을 실천했다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금방 흡수해 내 생활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사는 사람,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건강하게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방식이 나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채식에 관해서가 그렇다. 어떤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의 일상에 대해 꾸준히 보거나 듣는다는 것은, 그가 일상을 꾸려나가는 에너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동시에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보지 못할 낯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일상도, 내 일상의 전시도 누군가에게 에너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누군가에게 티끌만큼이나마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그래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다. 일이 년 전만 해도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내가 지금은 몇 시간씩 집중해서 공부하고 신선한 재료들로 끼니를 챙기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활기를 얻는다는 게, 자랑스럽고 즐거워서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야기하는 사람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다.


 마침 오늘은 비가 내렸다. 나는 오늘도 장독을 덮었다. 그리고 왕창 유세부렸다. 나의 유세에 함께 즐거워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요즘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