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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이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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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Dec 28. 2021

가출 청소년 하루 돌보기

우리 모두에겐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나와 함께 수업을 했던 수빈이는 늘 가출을 꿈꾸면서도 그것을 실행할 만한 깡은 없는 아이였다. 가출 충동 원인의 지분은 대부분 엄마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엄마와 수빈이는 기질이 너무 달랐다. 엄마는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반면, 수빈이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향이었다. 엄마는 스케줄을 짜는 것도 분 단위로 촘촘히 짜서 움직이고, 그것을 모두 지킬 정도로 계획적이고 부지런한 분이었다. 그러니 엄마의 시선으로 봤을 때, 잠이 많고 먹을 것에 환장하며, 엄마가 세워놓은 계획의 70%만 달성하는 수빈이가 마음에 들 리 만무했다. 매일 쏟아내는 막말과 폭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예의주시하는 호랑이와 그 앞에서 꼼짝도 못한 채 벌벌 떠는 토끼. 그것이 내가 본 둘의 모습이다.


나는 사실 두 사람 모두 이해가 된다. 둘은 가치관과 성향이 너무 달랐을 뿐, 누가 더 잘하거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세대가 변하면서 문화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생겨난 가치관의 차이가 두 사람의 성향과 맞물려 더 크게 드러난 것뿐이었다. 그런데 수빈이가 고3을 앞둔 겨울방학의 어느 날, 아이는 결국 집을 나오고야 말았다.


“쌤, 저 집을 나오긴 했는데, 갈 데가 없어요.”


아이의 문자를 받았을 땐 다행히도 내 수업이 막 끝났을 무렵이었다. 솔직히 매일 집과 학교, 학원만 오가던 아이가 집을 나왔다고 해서 딱히 갈 만한 데가 어디 있었겠나 싶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는 이제 막 집에서 나와 대로변을 걷고 있었다. 정말 충동적으로 나온 것이었는지 아이는 그 추운 날에도 무릎 나온 트레이닝 복에 패딩만 걸친 상태였다. 심지어 양말도 신고 있지 않았다.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온 아이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었다. 비록 차는 없지만 어디든 같이 가 주겠다고 말했다.


 “쌤, 저 배고파요.”


수빈이의 별명은 '먹보'였다. 늘 먹을 것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늘 배고팠다. 충동적으로 큰일을 저질렀으니 허기가 찾아온 건 당연했다. 우리는 백화점 푸드코트에 가서 치즈 돈가스 정식을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작된 아이의 이야기는 우리가 돈가스를 해치우고 아이가 세트 메뉴 안에 있던 우동과 내 세트 메뉴에 있던 메밀국수를 다 먹을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 엄마와 정말 대차게 부딪힌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에 대한 아이의 반항심이 한껏 고조되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실상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죄책감이었다. 당시 수빈이 엄마는 워킹맘이었는데, 아침 일찍 일을 하러 나갔다가 수빈이의 점심 시간이 되면 먼 길을 거슬러 와 점심을 차려주시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가고 있었다. 방학이라 대부분 아이들은 편의점이나 근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는데 수빈이 엄마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분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수빈이 엄마가 점심을 차려놓고 다시 나가시면서 벌어진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그렇게 잔소리를 쏟아놓고도 자기를 위해 밥을 차리고, 다시 자기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일을 나갔다는 사실에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그 밥을 먹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치에 대해 본인은 믿음이 별로 없는데, 그런 자신을 위해 엄마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부담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수빈이가 자기의 생각처럼 그렇게 능력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단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너무 낮을 뿐. 점심마다 따뜻한 밥을 차려 놓는 것은 엄청난 애정의 표시였는데 그것이 도리어 아이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난 밥을 먹고 나서 아이가 좋아하는 조각 케익과 밀크티를 사 주고, 그 자리에서 아이의 하소연을 모두 들어주었다.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사실 내가 해준 말은 별로 없었다. 아이는 말하면서 스스로 원인을 발견하고 답을 찾아 나갔는데, 난 그 앞에서 고개만 끄덕여 주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이 조금 나아진 아이는 나와 아이쇼핑을 하며 귀여운 팬시 샵에 들러 문구류를 잔뜩 샀다. 아이가 평소에 갖고 싶었다던 새해 다이어리도 샀는데, 집에 돌아가 새해의 버킷 리스트를 쓰면서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다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서점에 들러 문제집 세 권을 사서 들려 보냈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의 상황과 기분을 충분히 말씀드리고 아이에게는 모른 척해 주십사 부탁도 드렸다. 다행히 엄마도 이미 분위기를 짐작하고 계셨는지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이후, 엄마가 정한 빡빡한 스케쥴은 어느 정도 조정이 되었고, 아이는 숨가쁜 고3 시절을 보낸 뒤 원하는 대학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몇 번 가출 아닌 가출을 하긴 했지만, 비슷한 패턴으로 나와 하루를 보낸 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게 수빈이가 했던 유일한 ‘일탈’이었다.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아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방황이 많으면서도 무섭고 두려울 나이, 그러나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많은 시기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런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기엔 짊어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수빈이의 엄마도 아이를 위해 본인의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늘 따뜻한 밥을 준비했지만 아이는 항상 빈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했다. 밥은 따뜻했지만 먹는 동안 마음은 추웠다는 수빈이의 말을 들으면서 좋은 부모가 되기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충실히 자신의 삶을 살았고 아이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지만 막상 아이에게 필요한 포인트는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비단 수빈이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 도리어 아이에게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수빈이가 바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동안 힘들었겠다 라고 이해해주는 따뜻한 말과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부모에게 시간적 여유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많지 않다.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 모두에겐 숨 쉴 구멍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나마 아이들은 친구나 가까운 선생님, 혹은 선배들을 찾고 그 안에서나마 숨을 조금 쉰다. 아마 수빈이가 나를 ‘제 2의 엄마’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내가 아이들 곁에서 그 작은 구멍이라도 되어줄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막상 나는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 그런 구멍이 되어줄 수 있을까? 언젠가는 아이에 대한 나의 애정이, 아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곳을 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조금은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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