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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3,500원을 들고 계단을 오른다

by 레잇 블루머


"결혼했어요?"


서울에서 경기도 모처까지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사무실. 백 통이 넘는 이력서 중 유일하게 연락이 온 아웃소싱 업체의 대표가 내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아이가 둘입니다."


내 대답에 대표는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딱 좋네.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으면 책임감이 있거든. 열심히만 하면 돼. 처음엔 좀 힘들겠지만 몸이 적응하면 괜찮아져. 이 일로 월 오백 넘게 버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게 전부였다. 경력이나 성향, 적성 같은 건 묻지 않았다. 신상 확인만으로 채용은 이미 끝난 셈이었다.


나는 20대 때를 제외하고는 약 15년 동안 직접적으로 몸을 써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뭐든 좋으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마트 배송일의 외형 조건은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 배송 한 건당 3,500원

- 하루 최소 40건 보장(14만 원)

- 40건 미만이어도 40건 수당 지급


게다가 나는 마침 이 일에 적합한 차량을 갖고 있었다. 사업할 때 할부로 구입했던 중고 레이 밴. 놀고 있는 그 차로 하루 14만 원을 벌 수 있다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숙련된 기사들은 하루 기본 50건 이상, 최상위 기사는 60~70건도 한다고 했다. 심지어 100건까지 달성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배정받은 마트는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였다.


머릿속 계산이 빨라졌다. 50건이면 175,000원. 주 6일 근무 시 주 100만 원 이상.

게다가 주급 지급.

어떻게 느껴지는가? 꽤 괜찮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대표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렇게 벌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용을 제외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주유비, 차량 정비, 보험료, 감가상각, 소득세 등을 빼고 나면 실제로 남는 금액은 최저시급 수준이었다.


채용공고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엔 8시간 근무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을 빼면 실제 일하는 시간은 7시간쯤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장은 전혀 달랐다.


마트 배송 시작 시간은 오전 8시, 퇴근은 아무리 빨라도 오후 7시 30분, 대부분의 경우는 8시를 넘긴다. 길게는 밤 9시가 넘는 날도 있다. 하루 10시간은 기본이고, 12시간 넘는 날도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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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 하루 10~12시간 노동 → 수입 약 14만 원

- 주 6일 근무 → 주 80시간 전후

- 근로기준법 적용 없음 (개인 사업자, 지입 형태)

- 연장 수당, 휴일 수당, 연차, 퇴직금 없음

- 4대 보험 없음

- 모든 비용과 책임은 나에게


형식은 약간 다르지만 같은 배달일을 하는 라이더들처럼 거리 할증도, 피크타임 할증도 없다. 배달 플랫폼 라이더들은 이동 거리나 시간대에 따라 단가가 유동적으로 올라간다. 게다가 배달 상품의 기본적인 무게 자체가 다르다.


(라이더 일이 결코 편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한 편의 글이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마트 배송은 거리가 멀든, 시간이 늦든, 무게가 어떻든 무조건 3,500원이다. 파 한 단을 옮기든, 쌀 두 포대를 옮기든, 수당은 같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 5층은 기본이고 차량 진입이 안 되는 골목집도 적지 않다.



가장 힘든 케이스였던 일이 떠오른다.


- 20kg 쌀 2포대

- 2L 생수 2묶음 (총 24kg)

- 무거운 박스 하나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총 4번 왕복. 어깨는 굳었고, 다리는 후들거렸고, 손목은 시큰 거렸다.


일 시작 이틀 후, 허리 보호대를 샀다. 5일째 되는 날에는 무릎 보호대를 샀다. 열흘이 지난 후에는 손목 보호대도 사야 했다. 내 몸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출근 첫날, 같은 업체 소속으로 먼저 일하고 있던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른 일도 계속 알아봐요. 오래 할 일은 아니니까."


그 말이 지금도 매일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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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사항

본 글에 등장하는 ‘마트 배송’은 대형 마트(예: 이마트, 홈플러스 등)가 아닌 지역 기반의 중형 마트와 외부 용역 업체가 계약한 배송 방식입니다.


어떤 일이든 개인 자격으로 시작하는 일이라면, 당장 일이 급하다고 무조건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그들의 역할은, 수당을 '전달'해주는 것과 약간의 소득공제 업무 처리 및 회사 운영에 필요한 절차 일뿐, 우리에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안해할 필요도, 비굴할 이유도 없습니다.

갑을 관계에 연연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또한, 궁금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애매한 건 처음부터 명확히 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서명한 계약이 있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쫄지 마십시오. 협의하면 됩니다.

이미 그들의 계약서 내용과 행위 자체가 노동자에 불리한 경우가 많고, 그들도 법적 절차 등의 진행을 부담스러워하므로 협의해서 끝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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