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정짜리
24-38.

스물넷에 입사해 서른여덟에 퇴사하기까지 나의 이삼십 대 전반을 비행기 안에서 유니폼을 입고 보냈다. 시작은 단지 하늘색 유니폼이 잘 어울릴 것 같다던 친구의 말 한마디였다. 그렇게 시작된 승무원이란 직업의 호기심으로 대학교 4학년 가을, 항공사 공채에 지원해 운 좋게 국제선 승무원이 됐고 그곳에서 14년을 보냈다.

14년 동안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도시를 갔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특별하다 할 수 있는 많은 경험을 했다. 꿈만 같던 시간도 많았다. 두바이 사막에서 모래 썰매를 타기도 했고,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북이와 함께 헤엄치기도, 아무도 없는 새벽의 파리에서 반짝이는 에펠탑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됐다. 손님에게 무릎을 꿇고 빌어보기도 하고, 상사에게 반성문을 쓰기도, 손님의 토사물을 손으로 받아내기도 했다.


이 모든 시간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 입사, 승진, 결혼, 출산.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을 이 회사에서 일을 하며 승무원인 나로 해내 왔다. 사실 우연한 선택으로 얻은 직업이니만큼 그 직업에 엄청난 자부심이나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들고 소모적인 일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만두고 한 발짝 물러나 보니 승무원으로 살아온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중요한 시간이었단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


퇴사한 지 어느덧 1년. 승무원으로 살았던 때가 벌써 희미해져 감을 느끼다 문득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던 그때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기억을 미화시킨다고 했던가. 매일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나는 내 일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군기가 바짝 든 그곳에서 동료들과 여고생처럼 시시콜콜한 일로 깔깔거리던 것도, 갤리에 옹기종기 모여 칼로리 걱정하며 서로 앙뜨레를 나눠 먹던 것도, 기진맥진한 상태로 호텔에 도착해 푹신한 이불에 파묻혀 자던 행복한 순간도,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저 멀리 인천공항이 보이면 설레는 맘을 감추지 못하고 하이톤으로 페어웰 방송을 하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다 그리운 순간이다. 나름 쿨톤이라 하늘색 유니폼을 잘 소화했던 것까지.


승무원으로 살아온 시간은 나의 이삼십 대를 떠올리게 하는 젊음, 그 자체이다. 시끌벅적한 그 시간을 보내며 이제는 중년의 어른이 돼가는 나를 위해, 또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젊은 나를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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