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 스킬과 함께 어른이 되었다.

by 정짜리

서비스직이 업이 될 줄 몰랐던 스물세 살의 나. 막연하게 서비스직은 친절한 고객 업무 응대만 잘하면 되는 직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멋모르고 겁 없이 항공사 승무원에 도전했던 것 같다. 서비스직의 친절함에 은은하게 화사한 메이크업, 한 올 한 올 곱게 말아 올린 쪽머리, 광나는 구두와 함께 늘 구김 없이 빳빳하고 단정해야 하는 유니폼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그 당시의 어렸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서비스직의 어피어런스, 즉 단정하고 세련된 용모를 위해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고객들 누구도 헝클어진 머리에 꾸깃꾸깃한 옷을 입은 직원에게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단정하고 세련된 용모 자체가 그 직원, 더 나아가 그 회사에 대한 신뢰를 주고 거기에 더불어 충분히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주기 때문에 직원의 용모는 회사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언제나 품행단정, 용모단정을 위해 승객들을 마주하기 전 많은 노력을 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다림질이었다. 지난 14년 동안 밤이고 낮이고, 유럽이고 동남아고, 언제 어디서나 다림질은 나의 큰 숙제였다. 어릴 때 일요일 저녁이면 아빠 와이셔츠를 쌓아놓고 다리던 엄마 옆에서 나도 따라서 다림질을 해보고 싶어 하면 엄마는 다림질처럼 하기 싫은 게 없다며, 넌 이런 거 하지 말고 살라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삶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다림질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승무원은 블라우스, 치마와 바지, 카디건, 재킷, 스카프, 앞치마까지 늘 구김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매 비행마다 늘 유니폼은 단정한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체류 시에도 여벌 유니폼을 챙겨가서 호텔에서 다리거나 아니면 입었던 유니폼을 손빨래 후 말려서 다려 입는다. 호텔에 라운드리 서비스가 있긴 하지만 픽업 5분 전까지 맡긴 유니폼이 오지 않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발을 동동 굴렀던 경험을 몇 번 해보고 나서는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 유니폼을 맡기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승무원의 왓츠인마이백에는 높은 확률로 빨랫비누가 들어있다. 또 파우치에는 필수휴대품 중 하나로 얼룩제거펜을 들고 다닌다. 이렇게 대다수의 승무원들은 빨래와 다림질에 진심이다. 일하기 전까지 직접 다림질을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다림질이 이렇게 어려운 노동인 줄 몰랐다. 스팀다리미를 능숙하게 쓸 줄 몰라서 팔과 손은 물론, 반바지 입고 다림질하다 허벅지까지 화상을 입기도 하고, 해외 호텔 체류 시 방에 구비된 다리미의 출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다리다 유니폼을 태워 방마다 돌아다니며 선배들에게 유니폼 구걸을 한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습한 동남아에서는 아무리 다림질을 해도 눅눅해진 스카프가 살아나질 않아 헤어스프레이를 뿌리고 드라이까지 동원해 가며 스카프를 빳빳하게 세우려 고생고생을 했다. (동남아비행 필수품=새 스카프)


하루 종일 힘든 비행을 마치고 저녁에 퇴근해 녹초가 된 상태로 다음날 비행 준비를 위해 또 다림질을 할 때면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었다. 대학을 오며 어린 나이에 독립해 나름 혼자 씩씩하게 살아온 편이지만, 오히려 일을 하면서 부모님의 그늘이 그리운 순간들이 많았다. 새벽에 출퇴근할 때 마중 나온 부모님을 볼 때나, 퇴근하는데 맛있는 저녁 차려서 기다리고 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 후배를 볼 때, 일찍 출근해서 먹으라고 과일이며 떡이며 바리바리 싸서 보내준 누군가를 볼 때마다 나도 케어받고 싶단 생각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집에 가면 엄마가 유니폼 다 빨아서 다림질해 준다는 동료의 말이 가장 부러웠다.


오프 때마다 유니폼 쌓아놓고 다림질과 씨름하는 내가 안타까워서인지 엄마는 내게 올 때마다 엄마도 그렇게 싫어하던 다림질을 기꺼이 해주셨다. 엄마가 왔다 가면 깨끗해진 집과 냉장고의 반찬들과 함께 빳빳하게 다려진 유니폼이 옷장에 가득 채워졌다. 그걸 볼 때마다 나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애지중지 둥가둥가' 케어받는 존재란 사실에 행복해지곤 했다.


어느덧 엄마 5년 차가 된 나는 아이의 유치원 원복을 깨끗하게 빨아 다림질을 해 입혀 보낸다. 남편은 어차피 놀다 보면 구겨지고 더러워진다고 굳이 하지 말라 하지만 나는 습관처럼 늘 아이의 원복을 다린다. 엄마가 다림질해 준 유니폼을 입고 일할 때는 평소보다 더 힘이 났던 것처럼 우리 아이도 내가 다려준 옷을 입고 더 즐겁게 하루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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