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OO에요!”
괌에서 돌아오던 항공편. 열린 도어에서 승객 탑승 업무를 하던 내가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제자를 조우하게 된 상황에 당황함이 스치던 선생님 얼굴에 곧 반가움이 피었다. “저 승무원 됐어요. 선생님!” 더 말하려던 순간 길게 서 있던 탑승줄을 의식한 사무장의 따가운 시선에 곧바로 정신을 차리며 '환영합니다. 탑승권 체크하겠습니다' 승무원 모드로 돌아오게 됐다. 선생님은 내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내며 자리로 들어가고 나는 빨리 업무를 끝내고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박찬호 선생님. 그는 나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었다. 27살에 부임해 우리 학교에 오신 수줍은 미소가 귀여웠던 총각 선생님. 그 자체만으로도 여학생들에겐 어마어마한 인기가 있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을 좋아하던 친구들도 반에 몇 명씩은 꼭 있었다. 나 또한 늘 웃고 다니던 선생님이 좋았다. 졸업 후 한동안 찾아뵙지 못하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모교로 가게 되며 다시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까지 싱글남이었던 선생님은 여전히 잔잔한 인기를 몰고 다니고 있었다. 부임하던 해 첫 제자였던 내가 교생실습을 온 게 큰 의미가 있다며, 선생님은 교생실습 하는 한 달 동안 내게 술도 밥도 많이 사주셨다.
그런 찬호쌤을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비행기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가족들과 괌으로 휴가를 다녀온 선생님은 어느새 애가 둘인 아빠가 돼 있었다. 교생실습 끝나고 임용고시 공부하다 때려치운 얘기, 친구 따라 우연히 항공사 공채에 지원했다가 덜컥 붙어 승무원으로 일한다는 얘기, 벌써 시집간 동창이 누가 누가 있다는 얘기. 일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선생님께 달려가 다시 열여덟 여고생이 된 것처럼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선생님은 갑자기 승무원이 된 내 모습이 어색하고 낯설다면서도, 조잘거리는 내 모습에 여전하다며 설렘과 흥분이 잔뜩 묻어나는 내 얘기를 웃으며 다 들어주셨다. 곧이어 갤리로 들어온 사무장에게 '제 고등학교 은사님입니다'하고 소개를 하자 선생님은 아주 정중히 인사를 드리며 “우리 애 잘 부탁드립니다. 똘똘한 아이입니다” 하셨다. 그 순간 왜 이렇게 눈물이 핑 돌던지... 선생님 앞에선 열여덟 여고생으로 돌아가 철없이 구는 나처럼 선생님 눈에도 서른이 다 돼 일하는 제자가 여전히 어린 여고생 같으셨나 보다.
'우리 애' 선생님의 애정 어린 그 말은 내게 잊지 못하는 순간이 되어, 힘들 때마다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힘을 내곤 했다. 역시 선생님이란 직업은 하늘이 내려주는 게 맞나 보다. 누군가의 인생에 평생의 스승으로 남는 일이니까. 찬호쌤은 내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나의 첫 번째 사랑이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나의 또 다른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가장 사랑하는 그 이름. 엄마이다. 내가 일하는 비행기에 처음 가족을 데려간 게 엄마를 모시고 갔던 하와이 비행이었다. 일한 지 이제 2년 차, 막내 중의 상 막내였던 나는 엄마를 모시고 가면서도 신신당부했다. '엄마 비빔밥 많이 없으니까 비빔밥 주문하면 안 돼, 엄마 실수로라도 절대 콜버튼 누르지 마, 엄마 밥 먹고 나서는 그릇 쌓지 말고 트레이에 원래 받은 상태로 돌려줘, 엄마 자꾸 선반에서 짐 꺼냈다 뺐다 하지 말고 필요한 건 손가방에 넣어놔' 등 비행 내내 하지 말라는 금지 리스트를 엄마 손에 쥐여주며 비행기 타기 전까지 노심초사했다. 하도 하지 말라는 게 많으니 치사해서 안 따라간다며 엄마는 엄마대로 감정이 상하고 나는 이제 와서 안 가는 게 말이 되냐며 또 성질을 내다 비행기 탈 때까지 투닥거렸다.
그날따라 모든 클래스가 만석에 허니문 승객과 가족 여행객이 많아 엄마 얼굴을 보러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며 뛰어다녔다. 서비스가 끝난 후 비닐장갑과 탈취 스프레이를 들고 넋 나간 얼굴로 화장실 앞에서 청소하려 기다리는데(막내 승무원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식사 서비스 후 화장실 청소이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쏙 나오는 게 아닌가. 오늘 만만석이니 사람 많을 땐 화장실 가지 말고 불 꺼지면 가라고 분명히 일러뒀는데... 줄이 이렇게 긴데 화장실에서 한참 있다 나온 게 엄마였구나 싶어서 또 괜히 혼자 부글거리며 엄마를 쌩하니 지나쳐 화장실을 청소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화장실이 먼지 한 톨,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두루마리 휴지도 삼각으로 접혀있고 심지어 거울마저도 반짝거렸다. 너무나 깨끗한 화장실을 보며 나는 알게 됐다. 엄마는 한 손엔 스프레이, 한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온 객실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다니던 내 모습에 마음이 아팠나 보다. 나에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엄마에겐 어린 딸이 고생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속상한 일인 걸 미처 몰랐다. 그래서 엄마는 나 대신 화장실 청소를 다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깨끗한 화장실을 보며 얼마나 코끝이 찡하던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화장실 청소할 때마다 나 대신 화장실을 닦고 있는 엄마 모습이 그려졌다.
연차가 쌓인 후 비행에 가족을 데리고 온 후배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때 생각이 났다. 혹시나 우리 엄마처럼 딸에게 혼나며 주눅 들어 있진 않나, 딸 직장에서 누가 될까 눈치 보고 있진 않나 싶어서 그 어떤 손님보다 극진히 모시곤 했다. 당신의 딸은 훌륭하게 일을 잘하고 있으며 우리 회사에 누구보다도 필요한 사람이라고, 열심히 일하는 딸의 모습에 속상하기보단 자랑스러워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거기에 오래전 선생님이 내게 주셨던 애정까지 추가해 얘기하곤 했다.
우리 OO이가 없으면 비행기 못 떠요 어머님,
오늘 저희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