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실 승무원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업무는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그 비행에서 본인이 책임지는 '도어'이다. 올해 초 방콕에서 인천으로 오는 항공편에서 술에 취한 외국인이 공중에서 비행기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을 승무원들이 저지하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을 그만둔 지 한참 지났지만 나는 본인보다 덩치가 2배나 되는 외국인에 맞서 도어를 지키는 영상 속 여승무원에 200% 감정이입이 되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지, 그 짧은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 얼굴부터 추락하는 비행기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공사에 입사해 안전 훈련을 받고 객실 승무원이 된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비행기 도어는 몸을 날려 절대 사수했을 것이다.
도어의 중요도만큼 승무원이 이륙 전과 착륙 후에 하는 도어 확인과 도어모드 변경은 엄중한 3단계의 절차로 행해진다. 1차로 본인이 체크 > 2차로 반대편 승무원과 크로스 체크 > 3차로 맨 뒤 도어부터 전 승무원이 차례대로 보고하며 사무장이 최종 체크를 한다.
비단 도어뿐만이 아니다. 비행기는 승객의 서비스와 안전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싣고 떠나야 하기 때문에 객실 승무원의 체크리스트는 상상 이상이다. 안전보안장비 체크, 기내식 관련 사항 체크, 면세품 체크, 객실 청소 상태 체크, 기내 설비 체크, 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를 몇 박스 싣고 갈지도 체크한다. 승무원 본인의 비행 필수품도 체크해야 한다. 여권, 승무원 등록증, 회사지급품, 약품, 바꿔 신을 기내화부터 엑스트라 유니폼까지 체크할 것들이 셀 수가 없다. 여기에 해외에서 며칠씩 체류하는 동안 필요한 본인의 개인 짐까지 다 챙겨야 한다. 이런 업무 환경으로 인해 대다수의 승무원은 신입 교육 과정부터 더블 체크, 크로스 체크를 반복해서 훈련받는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도 매일 체크하는 게 습관이 되기 마련이다.
나만 해도 식빵 사기, 세탁소 옷 찾기 등 하루의 사소한 일정도 시간대별 알림이 울려 체크하는, 철저한 계획형 체크人의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이런 체크 강박은 작년에 일어난 두 번의 사건을 계기로 더 심해지게 되었다.
하나는 평일 오후에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이다. 소방차가 7대나 왔을 정도로 큰 화재였다. 나중에 들으니 그렇게 큰 화재의 원인이 안방에 있던 캔들워머였다고 한다. 캔들워머 스위치를 끄지 않아 아파트가 그렇게 활활 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이후 나는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집 안의 모든 콘센트와 가스, 전등 스위치를 몇 번씩 체크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차를 돌려 집에 돌아와 다시 확인했고 그래도 불안함이 쉽게 가시지 않아 홈캠을 사들여 집안 곳곳에 설치했다. 외출을 나설 때마다 다시 차를 돌리는 일이 반복되자 남편은 짜증을 내는 대신 화재보험을 가입하는 것으로 체크 강박에 시달리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두 번째 사건은 아직도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팔찌 분실 사건이다. 승무원으로 체크리스트를 가슴에 품고 산 지 어언 14년. 공항에서 좀도둑이 훔쳐 간 아이폰5 말고 물건을 분실해 본 적 없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살던 내가 명품 팔찌를 잃어버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남편이 출산 기념 선물로 사준 비싸고 반짝이던 팔찌였는데... 철두철미한 내가 그렇게 비싼 팔찌를 잃어버린 것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아 한동안은 눈만 뜨면 팔찌만 찾으며 하루를 보냈다.
화재 사건이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면 팔찌 사건은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부쩍 심해진 체크강박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는 집을 나서기 전 집안 곳곳을 함께 순찰하며 확인해야 마음을 놓아했고, 맘에 들어하던 머리핀조차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아예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기까지 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조심성 있는 태도를 가르친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더해 내 행동에 확신을 못 갖는 부분까지 아이가 날 닮아가는 것 같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조심하고 신중한 태도가 지나치면 의심과 불안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요즘 나는 집을 나서며 수만 가지 불안한 생각이 들어도 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 애를 쓴다. 팔찌를 잃어버린 일과 아파트에 화재가 일어난 것은 운이 나쁜 거지, 내가 덜 체크해서가 아니라고 스스로 안심시키며 나를 믿으려 노력한다. 집에 다시 뛰어 올라가 재차 확인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성공의 경험을 쌓아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오래된 직업병인 더블체크 지옥에서 해방돼 조금은 편안해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서며 그 연습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