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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Nov 20. 2022

<메모를 찾기 위한 시간여행>

식탁 소설집 1


 아마도 잠자리에서 급하게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수첩 속 아무렇게나 갈겨쓴 글씨를 좀처럼 알아볼 수가 없다.


 내 글씨 자체가 워낙에 악필이기도 하지만, 잠결에 침대맡에 둔 볼펜으로 손바닥만 한 수첩에 휘갈겼으니, 어쩌면 알아보기 힘든 게 당연할 일 인지도 모른다.

소위 말하는 소설 나부랭이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언제나 작은 이야기와 기억을 찾아 남몰래 머릿속을 헤집느라 멍하게 있다가 식사시간을 지나치거나 시내버스를 놓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대체로 그 시간 동안 뭔가 쓸만한 단어들이나 짧은 이야깃거리를 건져내는 나름의 이익을 거두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건져낸 이익들은 종이 예금통장 같은 그 수첩 속에 저금된다.

나는 아무래도 그 알아볼 수 없는 메모가 신경 쓰여서 그 글의 앞뒤로 쓰여있는 글들을 다시 읽어갔다.

날자가 적힌 글들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뒤죽박죽으로 되어있어서, 그 알아보기 힘든 메모가 언제 쓰였는지 유추할 수 없었다. 나는 도주한 생각을 찾는 추리 법을 써보기로 했다. 추리 법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수법은 아니고, 뭔가를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잊거나 잃어버리면 방금 전까지 하던 행동과 말을 시간의 역순으로 되짚는 일이었다. 나는 그 방법으로 가끔, 아니 대체로 머릿속을 이탈한 생각들을 검거하는 데 성공해서 수첩에 가두거나 원고지에 꽁꽁 묶어뒀었다.


 나는 먼저 수첩을 원래 자리로 돌려놨다. 그러고는 내 몸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놨다.  순간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분명히 ''이었다. 메모를 찾기 위한 시간여행이랄까?

대낮에 침실은 커튼 틈으로 들어온 태양광선에 나일론 이불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가득했다. 소위 말하는 햇빛 냄새, 그것은 분명히 아득하고도 강렬한 태양광에 무언가가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햇빛에 무말랭이는 주름이 파이고 옆 집 노인의 볼에는 흙점이 생겨 부분적으로 화상 자국 같이 쭈그러진다. 아무렇게나 책상 위에 둔 원고지도 노인의 볼 같이 타들어갔다. 분명히 햇빛을 많이 본다면 내 눈알도 언젠가는 타들어가서 동공의 투명한 부분이 젖빛으로 변색될 것이라 생각한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이불에는 간밤에 내 몸에서 흘러나온 땀과 각질과 침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힘든 이유가 아마도 냄새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종종 생각했다. 이성의 강렬한 페로몬향을 제외하고는, 사람 냄새라는 것이 대체로 참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고 고약하다는 것에 다들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냄새를 피하려고 덮는 이불을 몸 아래 깔았다.

냄새가 가라앉고 익숙해지자 조금은 편안해졌다. 피곤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눕히는 일이 오랜만이라 낯선 감각들이 몸을 타고 솟아났다.

그러다가 이 메모를 찾기 위한 시간여행은, 나를 찾기 위한 시간여행으로 바뀌어갔다.


 남들은 모두 일을 할 시간에 알아보기 힘든 메모의 내용을 찾아내려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몸 밖의 내가 내려다보며 머리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한심한 잉여인간 같은 이라고......"

머리 위에서 내가 얘기했다.

"내가?"

°"아니, 내가."

"어? 그러니까 내가."

°"그래, 어째서 그런 글을 쓴 거지?"

"글쎄...... 일단 알아볼 수가 없어서."

°"내 말이 그 말이야, 어째서 글씨를 그렇게 밖에 못쓰는 거냐고."

"그거야 잠결에 갑자기 생각이 났기 때문이지."

°"너는, 나는 서예학원도 다녔었잖아."

"너도, 나도 분명 서예학원에 다녔었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도 아니고 지금의 나도 아닌걸......"

°"그럼 모든 과거를 부정한다는 말이야?!"

"글쎄...... 모든 걸 부정한다는 건 아니지만, 몸으로 익힌 것들도 그렇게 쉽게 잊히는 걸 보면...... 잘 모르겠어."

°"그깟 악필을 대변하느라 존재 자체를 녹여버리다니...... 과연 소설가구먼 아주 궤변이 창의적이야."

"어떻게 하면 기억이 돌아올까?"

°"지금 노력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렇지, 이렇게 누워서......"

°"......"

"......"

°"어때? 생각이 좀 나?"

"아니,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야."

°"원래도 그랬잖아."

"그랬던가?"

°"중요한 내용이었을까?"

"글쎄......"

°"렇게 누워서 못 알아보게 쓴 메모를 추적하는 짓이 쓸모 있는 일일까?"

"어차피 글이라는 게 그렇게 쓸모 있는 건 아니야."

°"그럼  차라리 찢어버리자."

"그건 과거의 나에게 너무 미안한데......"

°"과거의 너, 아니 내가 너, 아니 나에게 알아보지도 못할 메모를 남겨서 힘들게 했는데도? 너는 그런 너, 아니 나를 걱정하는 거야? 게다가 넌, 아니 나는 조금 전까지 과거를 부정했었잖아."

"글쎄...... 분명히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여러 가지로 힘든 일들을 전가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것도 나잖아."

°"아니지, 그건 나야."

"너라고?"

°"너는 누워있고 어쩌다가 글을 쓰고 가끔은 밥을 먹잖아."

"분명 그렇지."

°"자, 그냥 찢어버리자."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메모를 찢어버리는 건 싫어...... 아무래도 그런 짓은......"

°"그래?"

"어......"

°"후회하지 않겠어?"

"어쩔 수 없지......"

°"또 미래의 너, 아니 내가 너를 원망하며 침대에 눕는대도?"

"그래도 그때는 셋이겠지......"

°"아니, 너는 몰라도 나는 말렸으니까 죄가 없어, 아마도 그때는 지금의 너와 그때의 너 둘이서 이렇게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나이면서 너였던 존재는 천장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조금 더 기억을 더듬었지만 소용없었다. 수첩을 들고 나와 책상에서 스탠드 불빛을 비추며 해독작업을 해봤으나, 내가 만든 암호는 기특하게도 보안이 철저해서 도저히 뚫을 수 없었다.

저녁식사시간이 다가왔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그저 언젠가의 내가 그 암호를 풀어내기를 바람 하며 수첩을 다시 침대맡에 던져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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