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나. 내가 아직 어리던 시절, 강아지와 산책을 한다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작은 손을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를 했었지.
‘나도 강아지 키우고 산책시키고 싶어요!!’
생명을 책임지다는 일의 무게도 모르고 한, 어린 시절의 기도였고 너는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기도 응답이었어.
새학기 반장 선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화장실에서 튀어나오는 네가 있었지.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 사이에서 기어나와 출근길의 어머니를 따라왔다는 강아지. 태어난 지 1개월 즈음 됐을 것 같은 어린 강아지가 길가를 방황하다가 댕줍 당했으니 솔직히 말해서 이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렇지만, 넌 진심으로 사랑스러웠어.
꼭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싶다던 내 기도 탓이었을까? 네가 실외 배변을 고집한 탓에 그 뒤로 지금까지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루에도 여러 번 산책을 나가야 했고, 어른이 돼서도 12시간 이상 집을 비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너를 키운 지난 15년을 후회한 적은 없단다.
생명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책임진다는 것이 처음이었고, 그렇기에 너를 이해하지 못해 너를 고되게 한 적도 정말 많지만, 그런데도 너는 나를 보면 항상 먼저 웃어주더구나.
너와 함께 산책으로 시작하는 아침엔, 너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해.
‘나에게 오늘도 이 아이와 함께 건강히 걸을 수 있는 하루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모든 걸 아신다고 하시니 15년 전, 너를 나에게 맡겨주신 그날에, 내가 감사하며 너와 함께 걷는 오늘도 아셨겠지? 그런 분께 오늘도 기도한단다.
‘이 아이로 인해 내가 15년 동안 기뻐하실 것을 아신 주님. 주께서 내게 주신 선물로 인해 내가 슬퍼하지 않게 해주세요.’
‘이 아이가 숨을 거두기 전날까지도 나와 함께 뛰어놀며 산책하다가, 잠자듯이 편하게 가게 해주세요.’
요즘 너는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도 많이 먹지 못하고 팔다리를 만져보면 확실히 근육이 많이 빠졌더라.
예전에는 내가 결혼하면, 네가 식장의 분위기를 띄워줄 화견을 해줄 것도 기대했고 함께 신혼집에서 사는 것도 꿈꿨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너에게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집에서 사는 것보다 지금과 같은 일상을 보내다 편안히 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니 조금은 마음이 아파 와.
그동안 너를 보며 참 많은 것을 배웠어.
너는 스스로의 눈곱도 뗄 줄 모르고 엉킨 털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해. 어느 날 너의 눈곱을 떼어주는데, 사람의 손이 너희들을 돌보기에 참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사람에게 이 땅의 생명을 돌보라고 하신 분이 내게 이런 손을 주셨는데. 나를 지으신 그분의 손은 나를 돌보시기에 얼마나 알맞을까? 너가 아니었으면 분명 깨닫지 못했을 거야.
너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난 아마 당분간은 새로운 아이를 키우지 못하겠지. 마음이 아파서일 수도 있고 여건이 안 돼서 일지도 몰라. 그래도 분명한 건 내 평생에 너를 떠올리면 난 미소를 지을 거야.
너와 함께 했던 십여 년이 정말 행복했다고 너는 내가 평생 만난 모든 강아지 중에 정말 최고의 강아지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