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 목표를 좇다가 목적을 잃지 말자.
싱그러운 숲 내음이 시원한 바람에 실려 오는 맑고 청량한 어느날, 평화를 노래하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는 숲속에 지저귀는 소녀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우와 아빠! 여기 너무 조용해! 바람도 너무 시원해!”
"그러게. 진짜 좋다 그치 은채야! 당신은 이런 장소를 어떻게 찾았어?"
"밤새 우리 가족을 위해 서칭한 결과지!"
"여기 너무 마음에 든다. 고마워 여보. 너무 조용하고 좋아…. 힐링된다."
일상에서 배경음처럼 들려오던 사람들의 말소리, 윙윙 울리는 실내의 메아리, 자동차 따위의 육중한 엔진음과 같은 모든 소음이 사라진 아름다운 적막감은 사람의 긴장된 정신을 풀어주는, 겨울날의 핫초코와도 같은 달콤함이 있었다.
“은채야. 너무 멀리 가면 안 된다? 여보 나 짐 좀 풀고 있을 테니까. 애 데리고 여기 구경 좀 시켜줄래?”
“그래도 괜찮을까? 여기까지 오느라 운전도 수고했는데….”
“혼자서 여기 정리하는 게 나한테는 쉬는 거야. 부탁할게.”
“치이. 뭐야~ 알았어, 그럼 요 근처만 다녀올게?”
젊은 부부와 천진난만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 오랜 도시 생활에 지친 그들은 이 아름다운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가려는 모양인지, 캠핑용품을 잔뜩 챙겨와서는 숲속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으그그그극— 하아아암--- 공기 좋다아~ 이날만을 기다렸지!”
장시간 차량을 운전했다는 아이의 아버지는 그동안의 피로감을 모두 떨쳐내겠다는 듯이 상체를 부들부들 떨며 크게 기지개를 키곤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 그리곤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신이 난 듯 방방 뛰어가는 딸아이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만약 단순히 육체의 쉼이 필요했다면 늦은 시간까지 뒹굴거리며 침대 위에서 눈을 붙였겠지,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건 다시금 한 주를 달려갈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얻는 것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효과가 좋고 확실한 쉼은 없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자신이 어렵사리 찾아낸 쉼터에서 마음껏 놀고 또 맛있는 음식으로 만족해 하는 것, 그것을 보는 것만큼의 행복이 또 있을까? 그는 오랜 운전으로 굳어 있는 어깨를 돌리면서 아내와 딸이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짐을 풀었다.
가족들이 밤의 추위와 벌레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그릴을 설치했다. 그 뒤엔 구워 먹을 고기를 꺼내어 놓은 뒤, 가져온 야채를 손질하려 하는데, 금새 주위를 둘러보고 온 아내와 딸아이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붙였다.
“아빠!! 아빠!! 이제 불 피울 거야? 나 TV에서 봤어! 나도 불 피우는 거 해보고 싶어!”
“은채야! 안된다니까…? 그건 아직 너에게 일러. 위험해! 아휴…. 내가 안 된다고 했는데 어찌나 이렇게 나서던지….”
“하하하-! 애들이면 보고 듣는 건 뭐든지 해보고 싶어 하지. 그래 우리 은채는 불을 피워보고 싶구나? 근데 그건 은채가 혼자 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아빠랑 같이 피우면 좋을 것 같아. 그럼 아빠가 불 피울 준비 하고 있을 테니까. 일단 그 전에 엄마를 도와서 야채를 씻어줄래?”
“싫어! 싫어! 난 야채 말고 불 피우고 싶어!”
“그렇지만 불 피우기 위해선 먼저 야채를 씻어야 하는걸? 그렇지 않으면 불을 피울 필요가 없어져! 아빠가 얼른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은채도 엄마 도와서 얼른 야채 씻자! 그리곤 같이 불을 피우는 거야 알겠지?”
“...”
“자~ 그럼 누가 먼저 준비 다 끝내나 시합하는 거야~? 시~~ 작!!”
아빠의 말에 아이는 살짝 뾰로통한 표정이 되어서도 얼른 불을 피우고 싶었던 것인지, 엄마를 도와 열심히 야채를 씻었다. 물론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으로 야채를 꼼꼼히 씻을 수는 없었기에 사실상 그녀의 어머니가 다시 한번 물에 헹궈야 했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아이의 엄마는 어떤 불만도 없이 차분히,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야채를 씻어주었다.
그 사이에 아이의 아버지는 불을 피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여 번개탄과 숯을 쌓아 불을 피울 준비를 했고 야채를 씻는 와중에도 그 모습이 신경 쓰인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건성건성 야채에 물만 묻히고 어머니에게 건네기 일쑤였다.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이의 어머니는 자상한 목소리로 아이를 타일렀다.
“은채야 지금 당장 너가 하는 일에 집중해야지. 야채를 이렇게 씻어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어.”
“그렇지만 나는 불을 피우고 싶단 말이야! 아빠가 준비를 다 마쳐 가. 이대로는 아빠가 먼저 불을 피우고 말 거야!”
“그렇지 않아. 아빠는 반드시 널 기다려 주실 거야. 아빠의 기쁨은 혼자서 불을 피우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너와 함께해서, 함께 기쁨을 누리는 거거든. 아빠는 불을 피우는 것보다 너가 불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기뻐하신단다? 그리고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얼른 야채 씻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너와 함께 야채를 손질하는 이 순간이 더욱 기뻐.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을 같이 끝내지 않겠니?”
“진짜…? 아빠! 나 빼고 불피우면 안 돼요?!”
“그래~ 당연하지! 우리 딸 빼곤 불 안 피우고 기다릴게! 약속이야!”
“응! 약속!”
그제야 아이는 안심이 되었는지 야채를 씻는 일에 집중했다. 물론 그렇다고 야채가 꼼꼼하게 씻긴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어머니와 함께, 그 일을 끝까지 마칠 수는 있었다.
야채를 씻는 일을 끝마친 아이는 서둘러 화로 앞에 서 있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빠! 약속 지켰어? 나 너무 늦었다고 먼저 시작한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우리 딸 올 때까지 아빠가 준비 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지! 자 이제 여기 잡고! 움직이면 안된다? 절대 움직이면 안 돼?”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토치를 건네곤 한 손으로는 점화기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이 놀라 움직이지 않게 꼭 붙들어 주었다. 점화기에 불꽃이 일고 순식간에 굉음을 내며 불을 뿜는 가스 토치. 바라고 바라던 그 장면에 아이는 환하게 웃었지만, 이윽고 순식간에 번개탄에 불이 옮겨붙고 숯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곧장 실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치이…. 뭐야 너무 쉽게 끝나버렸어.”
“그건 너가 야채를 꼼꼼히 씻은 덕에 아빠가 준비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잘했다 딸아.”
아이의 실망과는 별개로 그녀의 아버지는 대견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음식 재료와 불의 준비가 끝났으니, 그다음은 순조로웠다. 이글거리는 불판 위에선 사람을 안달 나게 만드는 맛있는 고기의 향기가 피어올랐으며 버너 위의 냄비에선 즉석밥이 지어지는 따뜻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금세 마련된 맛있는 식사 자리. 군침이 도는 음식이 가득히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며,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정작 아이는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얘야 맛있는 고기가 다 완성됐는데 왜 이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니?”
“그렇지만, 나는 불피우고 싶었는데 야채를 더 오래 씻었어, 그리고 야채 씻는 것도 불피우는 것도 고기를 굽는 것도 사실은 다 엄마 아빠가 했잖아. 나도 뭔가 해보고 싶었는데….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어…. 사실은 내가 못미더웠던 거지?”
일이 너무 쉽게 끝나버린 것이 아쉬웠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이 주축이 되었었다는 것이 불만스러웠던 것일까? 아이의 토라짐에 두 부부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곤 시선을 교환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이윽고 아이의 아버지가 분명하게, 그러나 자상한 목소리로 아이를 타일렀다.
“은채야 그렇지 않단다. 우리는 너와 함께 이 모든 일을 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었고 기쁨이었어, 너가 일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다. 만약 너가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불을 피우고 야채를 피우는 것은 물론,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어서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거야. 너가 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거야. 우리에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 우리 딸. 엄마 아빠가 일을 맡은 건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야채를 먼저 씻게 한 건, 그동안 너가 불을 안전하게 피우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야. 무엇보다 우리는 그 모든 걸 너와 함께하길 원했기 때문이란다.”
“맞아 은채야. 그리고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준비한 건 불을 피우기 위해서가 아니잖니? 좋은 경치에서 함께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서란다? 불을 피우는 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작은 목표에 불과했어. 우리는 우리가 함께 준비한 이 맛있는 식사를 너가 마음껏 누리기를 원한단다. 오늘 하루 너무 수고 많았다 우리 딸!”
사실상 수고는 두 사람이 다했지만, 부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하는 딸을 격려해주며 아이의 입에 따뜻한 고기를 넣어주었고 그제야 아이는 불을 피우지 못해 우울해했던 것은 완전히 잊어버렸는지, 눈을 반짝이며 고기를 음미했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식사를 즐기며 유치원에서 있던 이야기를 한참이나 떠들었는데, 아이의 부모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이야기에 한참 동안 어울려 주었다.
그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을 즐거운 추억이 되어, 아이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