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위해 살고 있어.

너가 알지 못하더라도 내 전부는 너야.

by 마타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다고 그래??!!”


“뭐…? 뭐?!!! 너 지금 엄마한테 그게 무슨….”


귀를 아프게 하는 카랑카랑한 소녀의 목소리에 그녀의 어머니는 넋을 잃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너 혼자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에 고생을….”

“그러니까!!! 누가 나 낳으랬어? 엄마가 책임지지도 못 할 일을 벌여놓고!! 인제와서 왜 난리를 치는 건데?! 날 사랑하기는 했냐는 말이야!!”


“...!!”


어머니에게 너무 심하게 말했나 싶어 잠깐 움츠러들었던 것도 잠시, 자신의 반항에 아무런 반박도 못 하는 어머니를 보자니 오히려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는 소녀였다.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말도 못할 거면서, 어째서 그녀는 늘 이렇게, 자신의 화를 돋우는 것일까?


“엄마가 널 위해서 하는 말인 거 모르겠어?! 너…. 너…. 그런 식으로 말하고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이 집에서 나가!!!”


“하.”


한숨만 나왔다. 자신을 설득하지도 못한 채, 기껏 한다는 말이 겁박일 뿐인가? 언제나 자신의 말을 떠받들어 주던 친구들의 모습과 부들거리며 자신을 겁박하는 어머니의 모습. 두 장면이 오버랩 되자 이제는 조금 남아 있던 죄책감마저 사라지는 소녀였다.


“아빠가 왜 집 나갔는지 이제야 알겠네. 그때도 아빠를 그렇게 보내더니 이젠 내 차례야? 됐어!! 내 친구들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준단 말이야!! 근데 엄마가 뭔데 내 친구들을 나쁘게 말해?! 이 거지 같은 집구석 이젠 나도 몰라!!”


사건의 발단은 사소했다. 추운 겨울밤 밤늦게 들어온 소녀의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는 거 같았다. 같았다고 말하는 건 오랫동안 추위에 코가 얼어있던 소녀조차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기 때문으로 아마 그녀의 친구들 중 흡연을 하는 일부 남학생들에게서 묻었리라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늦게까지 붙들어둔 친구가 동성이 아니라 이성 친구라는 것에 1차로 화가 났고 심지어 그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흡연하며 동내를 싸돌아다니는 친구들이라는 것에 2차로 화가 났다. 더욱이 딸의 변명까지도 믿을 수 없었는지 딸의 가방을 뒤져보겠다며 나섰고 소녀가 그것에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 사태가 여기까지 치닫게 된 이유였다.


사춘기의 소녀가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속박이었다. 이제 몇 년 뒤면 그녀도 성인이었는데 언제까지 이 속박을 이어나갈 생각이란 말인가? 거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들을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부터, 부모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점까지,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는 폭거였다.


기어의 그녀의 어머니를 방에서 내어쫓은 뒤 방의 불을 모두 끈 채, 새벽까지 훌쩍이던 소녀는, 끝내 결심을 굳혔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옷장에서 패딩들을 꺼내어 입고는 핸드폰을 꺼내어 조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던 친구들 중, 가장 잘해준다는 생각이 들던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집 나갈 거야.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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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어젯밤 그 난리를 쳤지만 그래도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딸의 아침밥을 차려주는 어머니였다. 새벽녘 푸르른 하늘에 아직은 세상이 조용할 시간. 그녀의 어머니는 밤새 울음을 참지 못하였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냉장고의 문을 열고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딸의 말이 틀린 것도 없긴 해…. 내가 뭐 해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 아이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겠어….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딸이 나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원하는 건 당연한 부모의 마음 아니겠어? 내가 포기하면 그 아이는 정말로 막 나갈 텐데…. 나라도 싫은 소리를 해야….’


소녀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기를 바라며, 소녀가 아침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던 어머니는 다시금 흐를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삼켜가며 밥솥에 밥을 얹혔다.


그녀의 인생도 참 기구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학대를 받으며 자란 그녀는 늘 안정적이고 단란한 가정에 대한 꿈이 있었다. 문제는 꿈은 좋았지만, 심각한 애정결핍은 그녀를 늘 위축되게 만들었고 좋은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 그녀의 눈을 가리웠다는 점이었다. 보호자가 사실상 없고 분별력 역시 없다시피 한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 사랑한다는 입바른 소리만 하면서 그녀에게 다가오던 수많은 이성들.

뒤늦게서야 사랑은 자기희생적이며 이타적인 것이라,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저 자신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것들은 전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그때는 그녀의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을 때였다.


사실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샘솟아 자신이 비로소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으로, 그 직전까지는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이기적인 욕망을 사랑이라 부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모든 일은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긴커녕 들어본 적조차 없던 그녀의 비극이었다.


그래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녀의 꿈만은 언제나 한결같아서 그녀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사랑이 아니라 욕심으로 자신에게 다가왔던 남편이,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와 같은 욕심으로, 다른 여성에게 떠나갔을 때도.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어린 나이에 생계 전선에 뛰어들며 혼자 아이를 돌보았을 때도. 끝내 남편이 이혼을 이야기했을 때도. 그녀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존심도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될 때까지 항상 자신을 희생했다.


친정 부모가 이혼의 책임을 그녀에게로 돌리며 좋은 남편을 놓쳤다고 나무라면 정말로 자신이 잘못이 있었던가 되돌아봤고 아이가 이상한 행동이라도 했을 적이면 늘 자신이 올바로 돌보지 못해서라고 자책했다.

어려서부터 휘몰아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자란 그녀에게 자존감이란,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거추장스러운 감정일 뿐, 사랑받지 못했던 그녀는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늘 자신을 학대할 뿐이었다.


‘그래 내가 더 사랑해야지. 아이는 아직도 어리고 이 가정에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나뿐이니까. 내가 더 사랑해줘야….’


밤새도록 자신의 잘못을 고민하다가 나온 그녀가 내린 해답은 이번에도 이것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과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지키고 소녀를 끝까지 사랑해 준다. 사실 이것이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증기 배출이 시작됩니다. 곧 맛있는 밥이 완성됩니다.]


분명, 금방 밥을 안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새 30분이 지나 밥이 다 됐다는 알림이 울렸다.


“헉 벌써 시간이?? 얘는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하여튼 참….”

이쯤이면 이미 일어났어야 하는 아이는 여전히 방에서 묵묵부답이었다. 아마 자신과 마찬가지로 잠을 설치다 늦게 잠이 들었던 모양. 아침에 깨울 때는 소녀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말을 부드럽게, 또 친근하게 걸어줄 것을 다짐하며, 그녀는 딸의 방문을 열었다.


“딸~ 아직도 자는 거야? 학교 가야지 어제는 엄마가 미안….”


그러나 그녀를 맞이한 것은 안전하고 포근한 침대 위에서 자고 있어야 할 딸의 모습이 아닌, 난장판이 된 채 텅 빈, 썰렁한 방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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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아주 짧았고 절망하는 시간이 더욱 길었다.

이 추운 겨울날 이 아이는 도대체 몇 시에 집을 나갔단 말인가? 여태까지 추위와 어둠에 떨며 바깥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소녀는 작은 추위에도 몸을 떨며 그녀의 품에 파고들 정도로 추위에 약한 아이였다. 처음부터 추위 속에서 버텨볼 요량으로 집을 나간 것은 아니겠지.


사실 미성년인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24시간 하는 일부 시설들의 경우, 법적인 문제로 미성년은 받아주지 않으니 그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떠오르는 것은 친구의 집에 갔을 가능성이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간밤에 딸이 어울렸다는 행실이 좋지 않은 이성 친구들이 떠올랐다.


땅 밑이 꺼지는 듯한 아찔한 감각이 들어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그와 동시에 초인적인 정신력이 그녀의 다리를 붙들어 매었다.


여기서 자신이 주저앉으면 끝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딸 아이의 행방을 찾아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절망할 시간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간단한 외투 하나만 걸치고선 뛰쳐나온 그녀의 피부를 차가운 겨울 공기가 아프게 했지만, 아마 이 고통은 간밤에 딸이 느꼈어야 했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 추운 바람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내며 빌라 밖으로 뛰쳐나온 그녀의 시야에, 주차된 차들 사이, 몸을 숨긴 채 주저앉아, 무릎을 감싸 안고 떠는 딸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얘야!!!!!!!”


소녀의 엄마는 샌들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는지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그대로 내달려 딸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이미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딸의 몸과 추위에 생기를 잃어버린 시퍼런 입술, 무슨 연유인지 찢어진 입술과 부은 듯한 딸의 볼, 헝클어진 머리와 피딱지가 묻어 있는 회색 셔츠까지.

자신의 과거가 떠오르는 듯한 딸 아이의 모습에 아찔한 절망과 분노, 원망의 감정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보다 먼저 어머니의 마음을 채웠던 것은 애달프고 안타까운 사랑의 감각, 긍휼의 마음이었다.

“...이리와 어서 들어가자.”


“왜…. 엄마 나 미워하잖아. 솔직히 말해봐 엄마도 나 같은 거 지긋지긋하고 사라져 버렸으면 좋을 거 아냐? 그야 나 때문에 엄마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재혼도 못 하고 있지? 그래서 엄마가 나보고 집 나가라고 그런 거잖아! 그래서…. 그래서…!!!”


울먹이는 와중에도 여전히 반항하는 듯한 소녀의 말,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그저 소녀를 안아줄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 너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했던 말이지 너를 향한 내 마음이 분노이거나 원망일 리가 없지 않니. 난 너를 미워한다는 걸 생각조차 해본 적 없고 너를 갖고 낳은 일 역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너와 함께하는 단란한 생활은 너가 나에게 오기 전부터 나의 꿈이었고 너는 나의 단 하나뿐인 딸인걸. 내 삶의 목표는 너이기 때문에 나에게 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야. 세상 모두가 너를 미워해도 나만큼은…. 그렇지 않아.”


“근데…. 근데…. 왜…. 맨날 나 혼자 둔 거야? 근데 왜 맨날 나 속박하는 거야? 왜 나보고 나가라고 한 거야! ”


울먹이는 딸 아이의 목을 끌어안은 그녀의 어머니는 추운 겨울날, 어떻게 해서든 소녀의 몸을 녹여주고자 꼭 안아준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 않고서는 너와 함께할 수 없으니까. 내가 널 위해 일하지 않으면 너와 내가 함께 생활할 수 없으니까. 내가 널 보호하기 위해선 너가 내 교육 아래에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진짜로 나가라고 한 게 아니라! 너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가 함께할 수 없다는 경고를 한 거야. 얘야 너가 아니면 내가 왜 살겠니, 내가 가진 모든 게 널 위해서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난 널 품은 뒤로 내 이익을 위해서 살아본 일이 없어. 넌 어른인 내가, 널 두고선 다른 일들에 더욱 마음을 쏟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너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늘 널 위하고 있단다.”


한참을 울던 두 모녀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집안 가득한 갓 져진 밥 냄새와 따뜻한 된장국의 냄새. 어머니가 지키기 위해 애썼던 두 사람만의 작은 행복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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