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수술 뒤 마주한 두려움
“네? 제가… 암이라고요?”
진료실 공기는 순간 냉동고에 갇힌 듯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염색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백발과 은색 안경테가 말해주듯
의사의 목소리는 익숙한 상황인 듯 담담했다.
그녀의 심장은 그대로 얼음장에 빠진 듯했다.
손끝에서부터 모든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
상실감에 몸이 떨리면서 눈앞의 형체들이 뿌옇게 흔들렸다.
미애는 늘 건강을 챙겼다.
아침마다 비타민과 유산균, 오메가 3 등 영양제를 한 움큼씩 챙겨 먹었고,
하루 30분씩 스트레칭을 빼먹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언니는 관리 참 잘한다”
말할 만큼 깔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늘 콕콕 쑤시는 위장부터였다. 업무에 시달리면 소화가 잘 안 됐고,
그러다 저녁이면 폭식으로 풀곤 했다.
라면, 치킨, 맵고 짠 음식들.
불규칙한 패턴은 결국 몸속 깊은 곳에서 폭탄처럼 자라고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조직검사 결과 위암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선고.
며칠 뒤 입원 수속을 받고 수술실에 누운 순간,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찬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얀 불빛, 차갑게 드리운 기구들,
팔다리를 꽁꽁 묶어둔 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날것의 짐승들 마음이 이러할까?
천정 사방에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모두 낯설고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그 순간, 자신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어떤 부품처럼 느껴졌다.
마취제가 들어오자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눈꺼풀이 천천히 무거워졌다.
“괜찮습니다, 금방 끝나요.”
간호사의 말이 들렸지만,
그 말은 아무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저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끝 모를 두려움만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수술 후 회복실.
사람과 병원 기구들의 윤곽이 어렴풋이 잡힐 때
처음으로 느낀 건 몸속을 가르는 깊고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천천히 손을 올려 복부를 만져보았다.
붕대로 칭칭 감아낸 미라처럼 나의 육체는 파괴되었다.
차갑고 기괴한 흉터.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온전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듯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거울 앞에 섰다.
흉터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거울 속 민낯은 초라했다.
평소 깔끔히 화장하던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는 깊게 꺼져 있었다.
문득 과거가 떠올랐다.
화려한 조명아래 나를 바라보는 젊은 남자들 시선이 좋았으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채워졌던 날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내 몸이라니…'
비참함이 목구멍을 뜨겁게 막았다.
자존심까지 함께 잘려나간 듯했다.
병실에서 누운 채 창밖을 바라보니
멀리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손짓하고 있다.
계절은 여전히 흘러가는데,
자신의 시간만 멈춰버린 듯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내게 누가 남아 있을까.’
결혼도 하지 못했고,
오랜 친구들도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이 뜸해졌다.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병문안을 와주는 발걸음 하나도 드물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불현듯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눈물조차 힘겹게 흘러내렸다.
몸이 아프다는 건 단순히 통증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이었다.
'이렇게 50대를 맞이하는구나.
나에게는… 아무도 없구나.'
그 허망감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밤이 깊었다.
병실 불은 꺼져 있었고,
창문 살에 반 정도 걸친 달빛이 스며 들어왔다.
맨발로 일어서 창가로 걸어갔다. 민낯 그대로의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터진 입술 깊게 박힌 잡티와 주름, 퀭한 눈동자.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었다.
두려웠다.
버려질 것 같고, 외면당할 것 같았다.
내 몸에 깊게 박힌 수술의 기억과 흉터,
이제는 감출 수 없는 상처가 되어
그녀를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다.
비참함의 증거이자,
동시에 살아남았다는 증표였다.
상실감과 외로움이 겹겹이 밀려왔지만,
그 안에서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살아 있다.
이 흉터와 함께라도, 아직 존재한다.’
미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흔드는 나무 가지들이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다.
외로움 속에서도,
무엇인가 희망을 기다리는 마음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나는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