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에 실패한 캥거루 아들
책상 위에는 라면 그릇과 배달 음식 용기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떡볶이 국물이 흘러 얼룩진 비닐봉지, 식지 않은 치킨 기름 자국,
어제 먹은 과자 봉지는 카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 한쪽 구석에는 2리터 콜라병들이 빈 껍데기만 남은 채 굴러다녔고, 젓가락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딸칵 딸칵" 재민은 마우스를 올려두고, 모니터 속 화면만 응시했다.
게임 속 캐릭터는 검을 휘두르며 레벨을 올리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붉은 피가 튀고, 몬스터가 쓰러지며 경험치가 올라갔다.
화려한 이펙트가 터질 때마다 그의 심장은 요동치고 잠시나마 두근거렸다.
골드가 쌓이고, 아이템이 떨어지고, 길드원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재민형님 축하드려요!"
"역시 형님! 레벨 업 속도 미쳤다!"
"오늘도 열심히 하시네요ㅋㅋ"
그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졌다.
게임 안에서는 누가 그를 뭐라 하지 않았다.
학벌도, 직장도, 외모도, 실패도.
그 어디에서도 간섭받지 않았다.
현실은 달랐다.
서른아홉 살, 공무원 시험은 몇 번이고 떨어졌고
원룸에서 혼자 살던 시절, 쓰레기는 치우지 못한 채 쌓여만 갔다.
언제부터인지 방 안은 냄새로 가득했고,
문을 열 때마다 치킨 박스와 라면 봉지가 쏟아져 나왔다.
집주인의 독촉 전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고, 관리비 연체 고지서가 우편함에 쌓였다.
관리소 직원의 눈총이 버거워 결국 원룸을 정리하지 못한 채,
결국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짐이라고 해봐야 컴퓨터와 게임기, 그리고 몇 벌 안 되는 옷뿐이었다.
부모님은 해마다 부쩍 등이 굽어갔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고, 걸음도 예전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경비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고, 어머니는 동네 마트에서 계산 일을 했다.
처음엔 “다시 시작해 보자” 하고 다독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 공기는 무거워졌다.
부모님 방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은 더욱 깊어졌고 길게 느껴졌다.
재민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어폰을 더 깊게 귀에 꽂았다.
“게임 좀 그만 해라.”
근무 교대로 경비일을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졌다.
재민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 금방 끝나가요.”
그 말은 하루에도 열 번씩 나왔다.
그러나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끝날 수 없었다.
게임이 멈추면, 현실이 다시 시작되니까.
현실은 그를 비웃었다.
취업 공고에 넣은 이력서는 읽히지 않았고,
친구들의 SNS에는 결혼식, 여행, 아이 사진이 올라왔다.
그 모든 게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자신은 여전히 부모님의 집 작은 방에 갇혀 있었다.
밤마다 모니터 불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재민은 컵라면 뚜껑을 뜯어내고, 젓가락을 휘젓다 말고,
다시 키보드로 손을 옮겼다.
새벽 두 시, 세 시, 네 시.
그가 가진 시간은 의미 없이 흘렀다.
게임 속에서는 레벨이 오르지만,
자신의 삶은 제자리였다.
아니, 점점 더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햇살이 손톱만큼 오르더니
어느덧 나무위까지 걸쳐졌다.
어머니가 아침밥을 차려놓고 불렀다.
"밥 좀 먹고 하지 않겠니? 김치찌개 끓였어."
재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캐릭터가 던전을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 준비되셨어요?"
"네, 갑니다."
아침밥은 식어가고, 어머니의 눈빛도 식어갔다. 그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늙은 부모의 한숨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을.
부모님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늙은 부모의 한숨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그 무게를 견딜 힘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더 깊이 모니터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누구도 그에게 “언제 취업할 거냐” 묻지 않았다.
누구도 “이제 나이가 몇인데 뭐 하냐”는 말로 찌르지 않았다.
재민은 게임 속에서만 강해졌다.
사람들이 자신을 ‘형님’이라고 불러줄 때마다
가상의 세계라도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형님 덕분에 클리어했어요!"
"역시 믿고 따라갈 만해요!"
그럴 때마다 도파민은 폭발했다. 뇌 속에서 쾌감이 터져나왔다.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과 인정받는 기분.
그러나 게임을 끄고 나면, 방 안엔 라면 냄새와 부모님의 한숨만 남았다.
어느 날 밤,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비닐에 덮이지 않은 음식 쓰레기들이 젖으며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는 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재민은 잠시 게임을 멈추고 창문을 닫았다.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민낯 그대로, 수염이 듬성듬성 자란 채 초라한 서른아홉 살 남자.
게임 속 캐릭터는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 속 자신은 아무 것도 두르지 못한 민낯이었다.
재민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회피하며 다시 모니터를 켰다.
현실을 민낯으로 직면하기엔 너무 늦었고,
게임 속으로 도망치기엔 아직 빠져나갈 힘이 남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