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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Apr 16. 2022

글은 신선해야 한다

시가 절로 나오는 길


도수리에서 관음리로 또는 관음리에서 도수리로 향하는 샛길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길을 지나다 보면 시가 절로 나온다.

길을 오가며 시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관음리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도수리에 있는 구름 화실에서 모임을 하기 위해 가로수길을 지나다녔다.

차로 지나다가 여기를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생각하곤 했었다. 

할 얘기가 많은지 차 좀 세워봐 하는 것 같았지만 약속시간에 빠듯하게 움직이다 보니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틈이 많아서 숨 쉴 수 있게 해야 폭신한 시간이 관리될 수 있다.

약속에 없던 소리와 색들, 바람이 실어다 주는 소식들이 틈틈이 들어와 경화되어 가고 있는 가슴을 다시 뛰게 할 테니까.


계절의 변화에 예민한 시인은 시시각각 신작을 들려주곤 한다.
노오란 은행나무가 되어



이곳을 지나며 숨겨 두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대면할 수 있었다.

쓸쓸히 가지만 남아 있을 때부터 초록잎이 무성해지고 노랑을 가득 안고 있을 때까지 길을 지나며 노래를 불렀다. 내비게이션 길 찾기를 누르면 추천으로 뜨지 않는 샛길이라 지역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다. 

하지만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그만큼 인접해 사는 주민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을 지나다 보면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많이 사는 거지? 싶지만 골목으로 빌라들이 가득가득하다.

길을 걷다 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데 희한하다. 

옆에서 말을 거는 자연과의 접촉을 방해하는 건 간간히 지나는 자동차 소리뿐이다. 


시가 절로 나온다는 게 비유적으로 하는 말로 들리겠지만 실화다.

글 쓰는 일을 좋아했지만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일기나 편지조차 쓰지 않고 살던 내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그때가 이 길을 다니면서니까 말이다.

퇴촌에 거주하시는 리잼출판사 대표이자 소설가, 시인이신 안성호 작가님께서 우리 모임에 시수업을 해주실 때가 시작이었다. 시 제목을 주시고 과제를 해오는 방식이었는데 불성실의 대표주자인 나는 평생 해오던 대로 걱정만 하고 과제는 결국 안 해가는 지질한 상태였다. 시수업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암담했다. 약속 장소는 다가오고 이 길을 지나는 동안이라도 생각해내야 했다. 단 몇 줄이라도.

간절함을 들은 걸까? 신기하게도 몇 줄을 건졌다. 

날리던 은행잎은 웃고 있었다.

그날들은 다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쩌면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빛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도수리 가로수길이 주는 시가 궁금하다면 이 길을 걸어보라.

시가 절로 노래할 테니...


드디어 탄로 난 길


변해버린 길, 주말이면 이렇게....

그리고 반듯한 인도까지.

좋은 거겠지.

나쁘지 않다. 차들은 서 있고 나는 걸었다. 이럴 땐 걷는 자가 승자다.

시골 사는데 저렇게 막히면 어떻게 사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살다 보면 방법은 나온다.

저럴 땐 걸으면 되고 시간대를 다르게 다니면 된다. 전혀 걱정 안 해도 된다.


지금은 봄이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아직 봄 스타일을 입지 못했다. 은행나무는 때가 아닌가 보다.

봄에 지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사진을 뒤적이다 찾지 못하고 지쳤다.

역시 글은 신선한 게 제격이다.

묵힌 글을 정리하는 건 에너지가 더 들어간다. 

그래서 바로 촬영하고 쓰려고 나갔다.


정말 오늘이다.
4월 16일

벚나무 꽃은 다 떨어져 가는데 은행나무는 원래 이런 건가.

게다가 다 잘려나갔다. 

건강을 위한 가지치기겠지, 물론.

이건 겨울의 앙상함도 아니고 왜 마음이 안 좋지?

지난주 기숙사에 있던 중1인 아들을 만나는 날이어서 미용실에 데려갔는데 아들이 화가 몹시 났었다. 기숙사에 있어서 자주 미용실을 못 오니까 좀 짧게 잘라 달라고 미용사에게 살짝 말해 두었는데 너무 짧아진 것이다.

하루 종일 화난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었다. 

왜 그 장면이 떠오르지?


글은 신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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