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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Aug 03. 2022

여름에 온 귀인

귀인 방명록

여름이라도 귀인은 올 수 있다.

과연 에어컨이 없이도 귀인을 알아볼 수 있으며 귀인 대접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마까지 겹쳐 습하고 무더운 날씨라도 말이다.

내게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은 모조리 겨울에 생산된 것들이다.

질척이던 눈 녹은 길 따위는 모두 삭제되어 버렸는지 함박눈이 사박사박 내리던 고요하고 상쾌한 겨울 풍경 속에 연인과 친구가 있다.

겨울이면 누군가 올 것 같았고 그래서 누구라도 반가웠던가보다.

여름엔 쾌쾌한 냄새가 났던 작업실도 겨울이면 난방비 걱정에 아껴 피우던 난로 주위로 추억들이 모여들었으니까. 그렇게 겨울은 추억을 만들고 여름은 그것을 잃는 계절이라 여겼었다.

땀을 안 흘리는 편인데 더위에 맥을 못 춘다. 찬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더 더워한다.

더위를 안 탄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운을 차릴 수가 없다. 체력이 약해서라고 자책하며 정신력으로 버텨보려고 노력했지만 두통만 심해졌다. 

결론은 이건 이겨낼 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젠 이런 조건을 만들지 않으려고 피하고 대비한다. 

여름에 잃었던 추억 속에 에어컨이 따라다녔다면 옛 애인과 헤어지지 않았을까.

시원한 냉면을 함께 먹고 이동하던 순간에 에어컨이 있는 자동차로 바로 연결될 수 있었다면 너를 좀 덜 미워했을까?



그럼에도 귀인은 여름에도 온다.

짜증이 극도로 올라가는 게 예고된 가장 덥던 2019년 여름날 떠난 2박 3일 홍대 여행.

그 위험한 날을 함께한 소울메이트 키키.

나보다 열 살은 어리지만 열 살은 많은 것처럼 이해해주는 친구.

그녀를 잃을 수도 있었던 여름을 떠올리니 신기하게도 우리는 참 행복했었다.

교통이 불편해서 멀지도 않은 서울을 마음먹고 여행하듯 가야 하는 퇴촌 살이 덕에 우리는 간간히 서울여행을 계획한다. 무모하게도 그 더운 여름에...

여행명은 예술창작여행이었다. 일명 드로잉 여행이라고도 명했다.

함께 미술관에 가고 연남동을 돌고 홍대 버스킹을 즐기며 드로잉 카페도 이용해봤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래도 좋다고 말이야.

물론 맛집 탐방도 충실히 했으며 게스트하우스에 돌아가서는 글을 쓰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도 갖었다.

무지하게 더워서 걸을 때 속도가 나지 않았지만 좋은 음악이 있는 순간에는 멈춰서 즐길 여유가 있었고 뭘 해도 눈치 보지 않을 만큼 원하는 게 같다고 느꼈다. 

빈티지샵에서 5천 원짜리 옷을 키키가 선물해줬는데 키키는 노랑, 나는 민트색을 사서 입고 다녔다.

내일은 그 옷을 잘 다려서 입어봐야겠다.

 

여름에도 우리는 귀인이었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어색했다면 몹시 피곤해졌을 거다. 내내 행복했으니 귀인이다. 

에어컨이 없어도 귀인이었던 나의 친구 키키와 이번 여름도 잘 지낼 수 있겠지! 

나에게 보이지 않는 그림 하나 그려줄래?




by 명랑한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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