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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Jul 06. 2022

퇴촌에서 프랑스 여행

오베장빌에서 온 손님


퇴촌 여행 중이다.

간혹, 살고 있는 게 아니고 여행 중이었냐고 깜짝 놀라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바보!

그렇게만 답해준다.


늘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여행객을 맞이하기도 하고 여행지를 잠시 떠나도 보면서 지금 스쳐가면 다시 보기 힘들 풍경을 감상한다.

내가 있는 곳이 정착지라고 하면 멈춤이 될 것이고 여행지라고 하면 움직이게 될 것이므로.

멈출 수 있는 생은 없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꽃이 된다 하고 나는 흙보다는 바람이고 싶고...

AI센서를 달고 태어난 퇴촌 책방의 문은 열려라 참깨보다 더 예민한 감각으로 종족을 가려내어 입장시킨다.

차별받은 나의 손님들은 우쭐대고 그 특별함에 필연적 만남을 직감한다.



프랑스 오베장빌에서 온 손님



이미 프랑스 여행은 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키키가 이끄는 쓰담쓰담 카페에서 30일 글쓰기를 하며 온라인으로 알게 된 윤옥은 프랑스 오베장빌에 살고 있었다.

같은 기수도 아니어서 서로 관심을 가질 만한 기회는 없었지만 인연의 붉은 실은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당겨 놓았다. 내가 카페에 올린 글에 마음과 정성이 담긴 댓글을 달아 놓았던 윤옥이 궁금해졌었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찾아 읽어보게 되었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다.

쉽게 알아차려주지 않을 것 같은 글 속에 숨겨진 마음을 그녀는 잘도 찾아내며 격려했다.

프랑스인 남편과 네 명의 아이들과 윤옥이 함께 자라고 있는 그 집,

2022년 봄부터 프랑스 오베장빌은 퇴촌 여행을 오기 시작했다.

향기가 너무 좋다는 은방울꽃을 새로운 친구 인사시키듯 사진 찍어 보내며 노동절에 선물하는 꽃이라고 설명해줬다.

내가 퇴촌의 벚꽃을 소개하면 오베장빌의 벚꽃도 인사했고 빨간 체리도 파꽃도 빠질세라 손을 흔든다.

빗소리를 녹음해서 보낸 적도 있었는데 요즘 유튜브의 빗소리를 들으며 숙면을 취하고 있다고 하니 그럴 줄 알았다며 본인의 직감을 자랑스러워했다. 길게 녹음할걸 그랬다고 아쉬워하며...

윤옥의 집 앞마당에서 새로운 소식이 오면 나도 덩달아 반가웠다. 

한 번은 지도를 검색하며 거리뷰로 산책을 하다 길을 잃은 적도 있다. 거리뷰로는 그녀의 집 문을 열 수는 없었지만 사진과 영상통화로 하는 여행은 비서를 거치지 않고 직통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그 아련함을 채워준다.

그렇게 소식을 전하던 그녀 윤옥이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라서 설레는 걸까? 누군가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전 느끼는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이 가족을 위한 준비는 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확신이 올 때가 있다.

이제 그것을 믿는다.


프랑스 가족은 침대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마땅히 숙소로 내어줄 방도 없으면서 무모한 초대를 한건 아닐까?

영어도 프랑스어도 하지 못하는데 윤옥을 제외한 가족과 대화할 수 있을까?

네 명의 아이들과 프랑스인 남편에게 어떤 음식을 준비해줘야 할까?

불안했다.

늘 그렇듯 걱정하고 불안해했지만 그냥 그대로 아무 준비도 없이 그들을 맞이했다.

윤옥 가족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은 확실했고 걱정하는 건 내 특유의 성격 탓일 뿐이었다.


그녀는 말했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안 해주셔도 된다고.

그냥 작가님과 함께 책방에서 책을 보거나 이야기 나누고 아무거나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그 말이 좋았다. 

퇴촌 어디가 좋아요?라고 질문하지 않아서.





그녀의 가족을 초대하고 싶은 것은 확실한 마음임에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선 탓에 내 공간에 대한 초라함이 느껴질 때면 숙소를 구해봐야 하나 고민도 했다.

사실 아이가 넷에다가 남편까지 6인 가족을 초대하는 일은 처음이라서 두려웠으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개구쟁이 일지 프랑스인 남편은 또 어떨지...

한두 명 방문하는 일은 언제든 부담이 가지 않지만 여섯은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해 보려 해도 문득문득 무서웠다.

운영이 원활하지도 않은 퇴촌 책방을 사랑해주시는 보스턴댁께 이 소식을 알리게 되면서 퇴촌에서의 프랑스 여행은 빛이 보였다.

보스턴에서 인생 2막을 사시고 은퇴 후 3막을 퇴촌 우산리에서 맞고 계시는 보스턴댁의 집은 방송에 소개가 되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이 서서 두 팔을 벌린 듯한 형태의 집이라는 의미로 캔틸레버 하우스, 기둥을 하나만 세워 가로로 길게 집을 짓는 걸 보고 마을 사람들이 붙인 '뜬 집'이라는 별칭이 붙은 집이다.

이 집에서 프랑스 가족이 하루를 여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퇴촌 책방의 팬으로서 당연히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며 쓸모 있는 집으로 만들고 싶다며 흔쾌히 또는 원하던 일처럼 해주셔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멋진 집과 자연, 보스턴에서 살던 이야기가 깊은 밤과 어우러져갔다.

아이들은 맨발로 정원과 밭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프렌치 스타일의 브런치도 준비해 주셔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깻잎도 따고 자두, 블루베리도 따먹고...

오던 날은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서 걱정했는데 하루 자고 일어나니 유난히 파란 하늘이 뜬 집에 비추어져 하늘과 이어져 보인다. 우리가 만난 것처럼...

몸이 많이 힘드셨을 텐데 프랑스 가족이 돌아간 뒤에도 김 작가 덕에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며 되려 고맙다고 하시니 이건 또 무슨 복일까?



퇴촌은 베짱이지.


우산리 보스턴댁을 나와 조금만 내려오다 보면 베짱이 도서관이 나온다.

퇴촌 책방에 여행을 온 자라면 김 작가를 만나러 온 여행자라면 베짱이 도서관은 필수 코스이기 때문에 개미가 되어 온전히 느낄 수 없다 해도 존재는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터라 대략 알고는 있어서 긴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바로 도서관 모드로 들어갔고 다음 행선지를 위해 재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개미인 내 이름으로 책을 잔뜩 빌리고 베짱이 소영이 사인을 받은 책을 사들고 나왔다. 

랄라 브레드 경화와 베짱이 소영이가 단짝 티를 내며 손을 흔든다.




오후가 한참 지났는데 나의 공간에는 가보지도 못해서 서둘러 팔당전망대라도 들러야 했다.

며칠 비가 쏟아져 팔당호가 밀크초코색이 되어 있어서 멋진 풍경을 자랑할 수 없었지만 팔당전망대의 500원짜리 밀크초코는 맛이 그대로여서 다행이었다. 

많이 달지 않고 진하기도 적당해서 내 입맛에 맞다. 다들 맞겠지 싶어 물어보지 않는다.

언제 와도 사람이 붐비지 않고 전망 좋고 입장료도 무료인 이곳을 카페 삼아 자주 와야겠다고 올 때마다 생각한다.  훗날 한 번쯤 프랑스로 전화를 걸어 팔당전망대에서 밀크초코를 마시고 있노라고 말하며 함께 아는 공간을 공유할 수 있겠지.

어쩌면 한 번 뿐일 수도 있는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와의 만남일지라도 밀크초코의 맛을 공유한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퇴촌 책방 환영단




글쓰기를 하면서 만난 인연은 남다르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알게 되면서
알고 지낸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 친밀감을 갖게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모두 모르는 사람이었다. 

프랑스 가족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우리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열심히 댓글로 호응해주던 윤옥을 모두 만나고 싶어 했다.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오니 푸짐한 한상이 되었다. 술보다는 제로 맥주와 모히또를 주로 마셨지만 한껏 흥분된 시간이었다. 프랑스인 남편과 아이들은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어서 대화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역시 과자는 한국게 맛있다.



퇴촌의 아이들과 프랑스 아이들이 함께 그림을 그렸다.

창작실 바닥에 도화지를 깔아줬더니 긴 시간 조용하게 집중한다.

다니엘과 루이, 미나는 이면지가 아닌 새 도화지를 오랜만에 사용한다고 하고 프랑스 집에서는 주로 이면지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큰 스케치북을 쉽게 넘겨 버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림을 다 그리고 정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뒷면이 남은 종이는 다음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구분해서 정리해 둔 큰형 요한.

좀 놀랐다. 

맘에 든다.

물자가 풍부하지 않던 시절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별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난 업사이클 아트 작가가 아닌가.



프랑스 여행 중이다, 퇴촌에서


여행은 다른 문화를 체험하는 일이니까.

한 가지 더 놀라 본다.

환영팀을 보내고 윤옥과 프랑스 남편은 책방의 책들을 둘러보며 말을 걸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권하며 프랑스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윤옥이 남편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거침없고 즐겁게 그려나간다. 못 그린다는 말을 먼저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아, 장 자크 상페나 세르주 블로크 같은 작가들이 나온 이유가 있구나. 

어쩌면 국민 모두가 그런 스타일로 그리나? 얼굴만 그려 두었는데 다음날 보니 몸이 완성되어 있었다.

6살 루이가 몸을 그려 놓은 것이다.

멋진 합작이다. 

어린 루이는 아빠처럼 그리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어른으로 성장하겠지.


예전엔 상상도 않던 프랑스 오베장빌 어느 집에 퇴촌이 여행을 갔다.

퇴촌 도수리 책방 구석에 앉아 구글 지도 거리뷰로 산책을 하며 낯익은 집의 초인종을 눌러 댈지도 모른다.

아이들 이름을 차례로 불러 볼지도 모른다.

그러다 너무 그리워져서 마일리지가 쌓이기도 전에 비싼 티켓을 살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 퇴촌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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