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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Apr 19. 2022

비밀파티와 미술쌤

도수리 김작가예술창작소의 수상한 다과회


누군가를 가르치러 들어가는 길은 
비밀리에 열린 파티장에 초대받은 손님이 되는 일이지.


그 주변을 처음 어슬렁거릴 땐 유난히 스산하고 조용해서 나만 두고 모두 어디론가 떠난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주 잠깐 망설인 것 같다.

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이미 파티는 시작되어 있었다.

다리가 세 개 달린 투명한 유리 재질의 테이블이 방 한가운데 놓여 있고 색색의 색연필과 물감, 열쇠 모양의 붓이 올려져 있었는데 착각인지 몰라도 내쪽을 힐끗거리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음악인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는데 높낮이가 없고 쓱쓱 싹 쓱싹 같은 리듬만 있었다.

모두 조심스럽게 가면을 벗고 자기 자신도 처음 보는 자화상을 대면하고 앉았는데 어색했지만 편안한 모습들이었다.

파티에 참석한 게 자기는 정말 처음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니 옆에 앉은 친구는 색연필 접시를 끌어다 꼬르륵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배의 불룩한 부분 앞에 놓아주었다.

언제 시작했는지 그림 한 장을 뚝딱 그려낸 눈을 깜빡이지 않는 동그란 사람은 그림을 망쳤다고 말하며 눈이 엄청난 크기로 동그래졌다. 

이 대목에 한마디는 해야 하는 역할로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에 뭔가 한마디 던져야 했다.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되는대로 말해주었다.


망치는 일은 없어, 다른 길로 가게 된 거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눈치가 보였는데 기분이 한결 나아졌는지 무리하게 커져서 눈썹에 붙었던 눈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새로운 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말없이 색연필 접시를 밀어주던 친구는 자화상의 바탕색을 고르느라 고심에 빠져서 약지 손가락으로 고추장을 찍어 먹듯이 색상에 따라 맛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는 사람의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영어였다. 몇 마디 알아들을 수 있는 걸로 봐서 독일어나 프랑스어는 아닌 것 같았다.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무식해 보일 것 같아서 참았다.

영어였지만 꼬르륵 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있으니 내 배도 꼬르륵 소리를 따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몹시 고파졌다.

다들 그림에 집중해 있는 틈을 타서 여기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들어오기는 했지만 문은 보이지 않았다.

열쇠 모양의 붓이 열쇠일 거라는 생각에 집어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나오기 전 루이스 캐럴이 직접 그린 땅속 나라의 앨리스 가운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줄래?


퇴촌에 들어온 지 7년이 되어 간다.

긴 여행 끝에 이제야 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일, 가르치는 일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마음을 보려 하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게 도와줄 수가 없다. 

아니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조금씩 내어 놓는 그림에 담긴 사연을 직면하게 된다.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이 좀 더 이야기해 보라고 도화지를 펼쳐 주면 된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쉬고 싶은 시간, 밤 8시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모였다.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는 말자. 

붓을 들고 얼마큼 힘을 줘서 그려야 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에도 일단 각각의 힘 별로 그려봐야 길이 보인다.

물감에 물도 섞어 보고 힘도 섞어 보고 닦아도 보면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올렸다고 화 낼 수도 있다, 근소한 차이란...

어젯밤 퇴촌 취미 미술반 '근소한 차이란'의 세 번째 수업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다가 여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굴러 떨어졌던 토끼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쩡히 네 개가 달린 테이블 다리도 세 개로 보이고...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김작가예술창작소에 열쇠를 집어 든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운영하는 퇴촌 책방의 걸진 못했던 첫 현수막의 문장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줄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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