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온통 벚꽃 무늬
한 발만 내딛으면,
잘 나왔다고 흩뿌려주며 벚꽃잎이 나를 반겼다.
그렇게 반길 줄은 몰랐는데...
봄볕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피부결이 까만 편이어서 그을리는 것도 싫지만 화사한 꽃잔치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글에 이런 칙칙한 발언을 하지 않아야 명랑한 김 작가로 이미지를 굳힐 수 있을 텐데라는 염려도 되지만 이게 나인걸 어쩌겠나.
꽃잎의 환호를 받으며 걷다 보니 어색하게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는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꽃들까지 인사를 해대는 통에 덩달아 밝아지고 말았다.
조금 늦은 벚꽃길 산책이었지만 기다려준 꽃잎들이 있어 다행이다.
갑자기 일어섰다.
나가자.
더 지체하다가는 이번에도 퇴촌의 봄을 놓칠 것 같아서 불안해졌다.
어디로 갈까?
퇴촌에 벚꽃 좋은 곳이 많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퇴촌에도 많다. 그것도 다양한 스타일로 고를 수도 있다.
기온에 따라 피고 지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성급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조금 게으르거나 주춤거리는 성격의 사람에게도 기회를 준다. 나는 조금 게으르고 주춤거리는 성격에 속하므로 기온이 낮아서 늦게 피어준 꽃잎들이 반겨주었다.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으로 먼저 향해 본다.
남종면 귀여리 물안개공원 조금 못 가서 건너편에 명성암 들어가는 길인데 귀여교라는 다리를 기점으로 벚꽃길이 형성되어 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할 때는 물안개 공원만 주로 다녔었는데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은 관광객들 덕에 알게 되는 것 같다. 주차된 차들이 너무 많아서 뭔가 싶어 보게 되었는데 게으른 나에게도 벚꽃을 맞이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곳이다.
오전이라 볕이 강하지 않고 따뜻한 정도여서 걷기 좋았다.
게다가 걷고 나서 뭘 먹을까 생각하니 한결 힘도 낫다.
먹는 일은 중요하다.
글을 쓰다가도 탄력 있는 힘을 주어 쉼표를 찍어 주듯이 즐거운 일을 하다가도 힘이 되어주는 쉼표는 필요하다.
너무 힘들기 전에 즐거운 쉼표 한 개씩 찍어 주는 게 매끄럽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린다.
"여보, 초콜릿 몇 개 가져왔어?"
대화가 순조롭지 않을 때 초콜릿 효과는 대단하다한다.
자연이 좋아 꽃놀이를 나왔다 해도 지치면 짜증도 난다. 그럴 때 다정한 말 한마디보다 강렬한 호르몬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달콤한 먹을거리이다. 초콜릿 때문에 다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몸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카메라로 사물을 들여다보면 일대일 대면이 되어버려서 누구 하나 외면하기가 어렵다.
웅크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반말로 말을 걸기도 한다.
앵글 안에서 사물들은 마음을 연다.
동행자가 가자고 재촉한다.
나의 여행은 속도가 없다.
앵글 속의 작은 방들을 옮겨 가며 이야기할 뿐이다.
그림자에 핀 꽃,
내 안에 핀 꽃을 저장해 둔다.
나무에만 꽃이 피는 게 아니었어.
무채색의 그림자에 눈처럼 핀 꽃들이 즐거웠다.
꽃잎이 환히 웃도록 그림자는 가만히 바라봐준다.
이런 어울림이 좋다. 나무와 꽃이 이별하듯 그림자에 핀 꽃도 떨어지고 말겠지만 그만큼이 여정이겠지.
제비꽃에 벚꽃 핀 사연도 들어볼까.
어디에나 있는 벚꽃이 어디에나 피어줘서 좋다.
제비꽃이 벚꽃을 떨군다 해도 민들레가 벚꽃을 날린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
묻지 않았다. 벚꽃잎 만난 사연...
퇴촌에 살고 있다는 게 좋다.
이런 날은 뭘 먹으면 쉼표가 될까?
절대 집에 가서 밥을 해 먹지는 말자고 다짐을 하며 근처에 보이는 민물새우탕을 생각해본다.
나는 관광객은 아닌 일상 여행자이니 가정식 백반 이런 거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