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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Aug 03. 2022

6월 귀인,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귀인 방명록

목의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한다. 

올해부터 조금씩 물이 들어오니 조금씩 상황이 좋아지고 몇 년 뒤부터는 강물이 들어와 인생 후반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한다.

명리학의 모든 걸 믿진 않지만 맘에 드는 내용은 굳게 믿는 타입이라 이런 밝은 운명의 예언은 믿고 본다.

게다가 90세 넘도록 편하게 산다니 이제 안심하고 좋은 것만 하련다.

어차피 잘 될 거니까...

그래서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귀인이다.

너도 귀인이냐고? 맞아, 내가 해주는 밥을 먹었다면 귀인인 거야.

밥하기 정말 싫지만 요리 좀 하는 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었다면 이유가 있는 거지.

이 말을 먼저 해두는 건 지금부터 소개하는 귀인에 대해 질투하지 말라는 거야.

넌 이미 귀인이니까.

알지?


6월은 그냥 가는 줄 알았다.

간당간당 6월을 하루 남기고 멀리서 귀인이 오셨다.

귀인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던가?

구름을 뚫고 나타난 프랑스 가족의 방문으로 귀인 목록이 글로벌해졌다.

귀인이란 무엇인가? 어원 따윈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내식대로 귀한 사람이며 나를 귀히 여겨 주어 내 뜻이 하늘에 닿게 도와줄 것 같은 기운을 한 짐 싣고 온 사람.

옛날로 치면 말을 타고 멀리 안갯속에서 유유히 나타났을 법한 분위기로.

입을 다물고 귀인과의 만남을 되짚어 보면 그들은 지금도 그렇게 나타나는 것 같긴 하다.

귀인의 부족이라도 따로 있는 것처럼.

언듯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표현해도 되는 것을 과장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차별되는 부분이 커서 구분해야 했다.

분명한 건 내 맘에 쏙 들었다는 것이고 빛이 났다는 것이고 같은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디 외국어에 약한 내가 영어나 불어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몇 마디 안 했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려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프랑스 오베장빌에서 온 은방울꽃 사진이 그랬다.

어림잡아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의 나이만큼 핀 꽃은 꾸미지 않은 손과 한 다발로 보였다.

정말 신기한 일인데 드로잉 수업을 하다 보면 수강생들은 입고 온 옷과 흡사한 색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이 얘기를 하면 모두 놀라곤 한다.

내가 택한 색, 내게 온 색 그리고 귀인이 그렇다.

우연한 만남을 사랑한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귀인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집어 든 한 다발의 은방울꽃이 나이만큼 피어 있는 신비한 체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마치 타로카드를 집어 들었는데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진심을 담아 마음을 건네면 사물, 자연 또한 내 운명과 이어져 있음이 보인다.

어색함을 극도로 못 견디는 나는, 맞지 않는 것들과의 삐걱거림을 느끼기 시작하면 모든 게 흔들린다. 

그렇게 자연스럽던 내가 뿜어내는 어색함에 나와 관계하던 것들은 자리를 잃고 떨어져 나간다.

자연스러움이란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는 게 맞는 거지만 가끔씩 강아지가 몸을 터는 것처럼 털어내며 몸을 이완시키는 것도 자연스러움을 지키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신기하게도 강아지가 몸을 터는 이유가 우리가 털어내야 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스트레스 풀고 흥분 가라앉히기, 이물질 제거, 스트레칭, 질병으로 인한 불편함의 표시,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 전의 신호...

본능적인 털어내기의 일환으로 기지개를 켜어본다.


프랑스인 남편과 네 명의 자녀를 둔 윤옥은 6월의 귀인이다.

어쩌면 윤옥의 가족 모두가 귀인인 것도 같다. 그만큼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래 귀인 부족은 따로 있는 게 맞다.

은방울꽃의 꽃말처럼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이쯤 오면 궁금해질 것이다. 대체 어떤 점이 당신에게 귀인이었던 거냐고 답답하단 말은 살짝 감추고 조심스럽게 질문하겠지. 굳이 설명할만한 내용은 없지만 이해를 돕고자 뭉뚱그려져 있는 감정의 덩어리를 살살 펴서 보여주고자 손끝을 예민하게 움직여본다. 

키키가 운영하는 글쓰기 카페에서 댓글로 호감을 갖었고 카톡으로 사진과 영상통화를 주고받으며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면 될까? 

보물상자를 들고 와야 귀인인 거라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직 열어보진 않았지만 꽤 무겁다. 영원히 열어보지 않는다 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귀인임을 제대로 증명하지 않는다면 질투의 화신들이 들고일어날게 뻔하다.

그냥 나 좋대서 좋은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제대로 좋아해 줘서.

윤옥이 내 글에 남겼던 댓글들은 제대로 좋아해 준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웃어야 할 대목에 웃어주고 대꾸해줘야 할 땐 그렇게 하고. 누군가 내 얘기를 잘 듣고 있다가 필요한 선물을 해 준 기분이랄까?

그녀의 가족까지 좋은 건 윤옥의 가족이어서만도 프랑스인이어서도 절대 아니다.

나는 잘 나가는 업사이클 아트 작가는 아니지만 타고난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도 작은 물건 하나 음식 하나 쉽게 버리지 않는다. 버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의미까지 부여한다. 그래서 정신은 작가이다. 강동구 리사이클센터에서 설립한 업사이클아트센터 입주작가로 들어갈 때 앞뒤 안재고 이건 내일이다 싶었으니까. 프랑스인 가족은 친환경이 몸에 베인 사람들이었다. 휴지 한 칸을 그냥 버리지 않았고 종이 한 장을 감사하게 사용했다. 게다가 외모까지 모두 아름다웠다. 그냥 이쁘기만 해도 반할 판인데...

나이가 다르고 사는 곳이 멀고 종교가 다르고 문화도 다를 것 같은 윤옥 가족이 퇴촌에 가져온 프랑스 여행은 높은 곳에 올려 두었던 여행가방을 내려놓게 했다. 

내년엔 반드시 떠나야지 마음을 다지며 일단 먼지만 닦아 다시 올려놓는다.


얼마 전에 하도 답답해서 철학관에 전화상담을 신청해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을 피하고 살아야 할까요? 귀인이 오지는 않을까요? 했더니

귀인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인이었던 사람도 어느 순간 귀인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본인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거라 지금 그걸 알려드려도 선입견만 심어드리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신다.

김정숙 님은 사주가 궁금하신 게 아니고 심리상담을 원하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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