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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Sep 24. 2024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

로랑스 드빌레르의 <철학의 쓸모>를 읽고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날씨 얘기다.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夕)이었다'며 지루하게 이어진 길고 긴 여름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게 인사치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최근 안타까운 죽음을 곁에서 보며 삶과 죽음 앞에선 무기력하고 미미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구나를 절절히 느낀 후 몸살이 찾아왔다. 그래도 힘을 내보자라고 맘먹고 폭염 경보가 내렸던 연휴 마지막 날 이를 악물고 양성산 정상에 오른 것이 화근이 됐다.

욱신욱신 쑤시는 게 몸인지 마음인지 새벽 두 시 잠에서 깼다. 양을 100마리쯤 세다가 안 되겠다 싶어 로랑스 드빌레르의 <철학의 쓸모>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꺼운 철학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잠이 오겠지 싶어서였는데 오산이었다. 잠이 오기는커녕 머리말의 제목인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를 읽는 순간부터 나의 뇌가 재빠르게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지속시켜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제한도 제약도 없는 완벽한 자유란 없다. 자유란 적응하는 것, 즉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든 환경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환경에서 우리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로랑스 드빌레르 <철학의 쓸모> p.10/2024/FLKA


맞다.


산다는 것은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지속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를 감당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삶이 아닐까?

나조차도 하루의 주어진 시간을 좀 더 유의미하게 보내기 위해 순간순간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고, 후회를 하기도 하고, 또 그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치고 있는가?

오늘만 해도 정말 이해되지 않는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을 이해해 보기 위해 얼마나 나의 뇌를 가동했나?

이불을 이리저리 돌돌 말며 뜬눈으로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까짓 거 잠이야 죽으면 평생 잘 텐데 하며 이 새벽에 철학자들의 명언을 읽는 다. 양 세기보다는 심신 안정에 더 도움이 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누구와의 대화로도 명쾌한 답을 차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저자는 철학의 쓸모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 우리에게 진단과 소견을 제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우리가 실제로는 병에 걸린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은 날 잠에서 완전히 깨게 했다. 새벽 세시가 되어 가는데 말이다.


철학의 역할은 '정신의 가장 큰 불행', 즉 인생을 살아가면서 절망에 빠져 고통을 겪는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절망하거나,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거나. 병에 걸렸는데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 절망할 것인가, 담대하게 나 자신으로 살아갈 것인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p24


철학이 필요한 당위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담대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 번쯤 고대 철학자들이 남긴 명언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현재 자신이 처한 막막한 현실이나 고민이 산처럼 크게 느껴질 때, 인간 본래의 나, 내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직면한 문제 앞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철학의 선구자인 소크라테스는 어느 날 델포이 신전에 갔다가 그곳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란 경구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내겐 철학적 의미보다는 어린 시절 개그맨 최양락이 네로 황제복을 입고 외쳤던 '너 자신을 알라'가 먼저였는데, 그 시절에는 그저 최양락 특유의 말투와 과장된 몸짓이 우스워 개그 코드에 지나지 않았었는데....

깊은 밤 이해할 없는 방식의 인간을 이해하는데 깨달음을 준 철학.


'너 자신을 알라'


당분간은 이 책을 위안 삼아 광인들의 잔치를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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