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귀에서 가끔 '삐-----' 소리가 난다. 사실 늦여름 그 사건이 있은 후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삐----' 소리다. 포털에 증상을 검색하니 '이명 증상'이라고 나온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 PD와 카메라 기자도 이명 증세가 있어 병원과 한의원을 다니던 것을 봤다. 둘 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최고라고 말해 병원 가볼 생각조차 않았다.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소리라 그럴지도 모른다. 증세가 심해지거나 못 견디겠으면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갈 테니 혹 내 글을 꼬박 챙겨보는 엄마는 걱정하지 마시길... 유독 바쁘게 보낸 한 주나 전화와 메시지가 많이 오는 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현재의 나로선 어찌할 바 없어 꾹꾹 누르며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자주 생길 때 '삐----------' 소리가 난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가끔 '삐-----'소리는 나지만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얼굴 좋아졌어요. 표정이 달라졌어요. 보기 좋아요"란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나면 겸연쩍어 "살이 쪄서 그래요. 살이 쪄서 얼굴이 광이 나죠?" 이렇게 답하곤 하는데 속으로는 말랑말랑 해지는 내 마음. 사실 기자를 할 때보다 행복의 빈도가 잦아졌다. 예전보다 더 분주해지긴 했지만 긴장감 속에 곤두서 있던 시간이 더 줄어서인지 나무를 봐도 보도블록 틈에 삐집고 올라온 들풀만 봐도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무언가 빈틈을 찾고, 칼로 무 베듯 냉철하게 거짓과 진실을 나눌 필요가 없어서일까? 사람들 만나는 일도 편해졌다. 사람을 만날 때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내 마음이 예뻐지고 있나 보다. 그런데 최근 몇 주는 다시 기자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굴뚝같았다. 독하게 질문하고 독하게 기사 쓰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그래서 요즘 '삐------'소리가 나나보다. 내 마음을 돌아보라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꽂혀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마음이 보내는 경고음인가 보다.
당직이 없는 주를 골라 b에게 캠핑을 가자고 했다. 헤어디자이너인 b는 주말이 대목인데 주말 장사를 접고라도 가까운데 어디 다녀오자고 했다. 토요일 오전 장사만 하고 가족들과 집에서 15분 거리인 애견캠핑장에 다녀왔다. 일 년에 한 번은 푸딩이를 데리고 캠핑을 가는데 올해라고 빠질 수 없었다. 가만 보니 나와 애들보다 b가 더 신났다. 사실 행감기간이라 내가 좀 바쁘기도 했지만 모든 걸 b에게 맡겼다. 강아지만 안고 몸만 달랑 가서 b가 숯불에 구워주는 고기와 낙지호롱이, 닭갈비, 어묵국을 새벽 한 시까지 먹는 호사를 누렸다. 밤이 깊어갈 때까지 내가 한 일은 아이들과 불멍을 하고 입을 쉬지 않고 계속 먹어댄 것뿐이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보면서 세상 뭐 별거 있나 하며 지난 한 주를 돌이켜봤다. 밉다 못해 증오란 단어까지 떠올렸던 이런저런 일도 불 속에 집어넣고 몽땅 태우고 싶었다. 말의 홍수 속 범람하는 진흙탕은 누군가에게 '삐-----' 소리를 안겨주고 가슴에 못을 박는다.
넘쳐나는 말, 말, 말의 세상에서 자신이 내뱉는 말 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자가 있다. 그런 자들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귀담아듣지 않는 것뿐이면 다행이지 자신의 주장만이 '진실'이라며 상대를 '악'으로 내몰거나 벼랑 끝으로 내몬다. 미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묵과 기도뿐이었다. 신경을 덜 써야 하는데 지난 늦여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후 자꾸만 그쪽으로 신경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책을 읽었다. 독서가 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믿으며 가만히 책을 읽다 보면 분노로 차올랐던 내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지고 평정심을 되찾게 된다. 이번 주 나에게 정말 고마웠던 책 한 권 코르넬리아 토프의 <침묵을 배우는 시간>이다. 지은이 코르넬리아 토프는 경제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독일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다. 정치경제학과 심리학, 커뮤니케이션 연구, 음성학, 사회학을 공부하였고, 트레이닝 연구소를 설립해 30년 넘게 독일의 유수한 기업에서 전문 코치와 트레이너, 강연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실천하기 쉽고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는 국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하는데 요즘 '삐-------'소리로 고통받고 있는 나에게 평화와 안정을 되찾아 주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잘 알면 세 마디로 족하다. 잘 모르니 서른 마디가 필요한 법이다." 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의 명언이 옳다면 우리의 정치가들, 상사들, 방송인들, 교사와 친척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결론을 말하자면, 침묵의 힘을 모르기 때문이다.
코르넬리아 토프의 <침묵을 배우는 시간> p8 서교책방 2024
'그래 맞아. 침묵의 힘!'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침묵을 배우는 시간인 것이다.
작가는 제6장 대화를 유리하게 이끄는 법 중 '참을 수 없는 모욕에 대처하는 법'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에 조건반사로 되받아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저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때로는 공격적인 침묵도 좋다. 비언어적인 모든 것을 총동원한 침묵, 찌푸린 이마, 앙다문 입,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자. 말 그대로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상대를 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생각을 하되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말라. 말로 하는 순간, 효과는 사라지니까. 학자들은 텔레파시가 없다고 하지만, 장담한다. 텔레파시는 분명 있다.
같은 책 p174~175
난 이 구절을 읽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앙다문 입으로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본 뒤 텔레파시를 보내리라 다짐하면서... 속이 다 시원해졌다.
피타고라스는 "말을 하려거든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라고 했다. 비울수록 커지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면서 말에 품격을 실어보자.
그리고 작가가 제안한 <침묵수업 4> 모든 소음 끊어보기
*고요가 두렵더라도 가끔은 의도적으로 고요한 환경을 찾아야 한다.
*고요 속에서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자신을 찾는 가장 빠른 길은 마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 대화는 정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같은 책 p138
까만 밤 노란 전구가 사탕처럼 하늘에 걸려있고
따뜻한 불의 온기를 느끼며
아무 말 없이 가족들과 눈 맞추는 일.
이런 게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