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가기 위해 미리 맞춰둔 알람에 몇 번을 뒤척이다 눈을 떴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마주한 창밖은 온 세상이 하얗다. 보기 좋다.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아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세상에 어둡고 추잡한 악의 무리들을 흰 눈이 싹 다 덮어버렸으면 좋겠다. 더 펑펑 내려라. 펑펑 내려라. 온통 세상이 하얘질 때까지 쏟아져 내려라. 성경 몇 줄을 읽고 습관적으로 뉴스 모니터링을 한다. 에어부산 사고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무안공항 사고가 있은지 얼마 안 돼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놀랬다.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지만 사고 현장에서 벌어졌을 아비규환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하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소녀처럼 감상에 젖었다가도, 민족의 대이동 설 명절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안 되지 하며 걱정이 앞선다.
외며느리인 난 명절이면 10~12가지의 전을 부친다. 요리가 익숙지 않은 나로선 제일 적격인 일이다. 어머니께서 전 재료를 손질해 주시면 두부 전을 시작으로 대미의 김치전까지 5~6시간에 걸쳐 전을 부친다. 결혼 3~4년 차까지만 해도 주야장천 전 부치는 일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많은 양을 부치는지, 종류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속으로 불평을 쏟아내다가도 5년 차쯤에는 요령이 생겨 전 부치기 작업에 막걸리나 맥주 한 캔을 곁들인다. 약간의 알코올은 노동요처럼 전부 치는 행위 자체를 흥겹게 했다. 그러다 어쩔 땐 기분에 취해 기름을 너무 철철 부어서 어머님께 한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기술적으로 휘익 김치전을 뒤집으려다 실패하면 한쪽 옆에 다 뭉개버리고 내가 먹는다. 다른 재료 손질로 분주한 어머님과 달리 난 전의 세계에 빠져든다. 어깨가 쑤시고 가끔 두툼한 허벅지가 쑤셔오기라도 하면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나름 15년 차 전 부치기 베테랑이다. 그런데 올해는 시누이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아직 안 익었잖아. 더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둬야 안 부서져" 시누이 말에 괜스레 어쭙잖은 반감이 생겨 계란 속에 담갔다가 프라이팬에 놓는 고차원적 작업은 아예 배제하고 단순히 뒤집기만 했다. 그런데 막판에 어머님께서 김치전 재료를 주시는데 한소쿠리다. b가 좋아하는 김치전. 16장째 부치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민망하신지 "너무 많이 했나" 하신다.
"어머님 고지가 보여요"로 화답을 했다. 자칫하면 불평불만을 하는 며느리로 보일지 몰라도 난 진심으로 전 부치는 일을 즐긴다. 다른 요리에 서툴러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 집과 달리 말수가 없는 시댁에서 전 부치는 일은 시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와도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을 부치며 어색할 수도 있는 고부지간은 가끔 자신의 남편들을 흉보기도 하고, 결혼 생활의 힘든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여자들만 아는 얘기. 그런 얘기. 여기서 주의사항은 수위조절이다. 도가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설날 영화를 보고 사춘기 아이들을 졸라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으로 찍으면 됐지 무슨 스티커 사진이냐며 어깃장을 놓는 아들에게 게임 현질(게임상 아이템이나 재화 등을 부분 유료화 게임의 유료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을 해주겠다고 꼬셔 숍으로 들어갔다. 머리띠를 쓰고 다소 과한 포즈로 표정을 짓는다. 얼마 만에 스티커 사진인가? 행복하다. 행복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사촌동생과 이모부, 둘째 이모가 식탁에서 부모님과 고스톱을 치고 계셨다. 화투장을 잡은 동생의 하얀 손이 돌아가신 이모와 참 닮았다. 쓰리고만 외치면 대부분 독박을 쓰던 이모였는데 사촌동생은 제법이다. 두런두런 식탁에 앉아 돌아가신 이모를 그린다. 살아생전 이모의 모습과 지난날의 추억들... 나랑 딱 열 살 차이가 나는 사촌동생이 여자친구가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애인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연봉은 어떻게 되는지?.. 이런 질문 진짜 하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술 한잔이 들어가니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내 질문에 동생의 입가가 실룩실룩 인다. 8살 연하 회사 직원과 사랑에 빠졌다는 동생. 그때부터 식탁에 둘러앉은 6명의 성인남녀는 모두 상기됐다. 각자의 연애관과 삶의 방식, 결혼관 등을 폭풍처럼 쏟아내는 수다전쟁이 시작됐다. 식탁 위에 둥둥 떠다니던 말들은 정치나 종교 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어느새 흔한 노랫말이 되어 설 분위기를 띄운다.
명절 연휴에 이렇게 오래 쉬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기자를 할 때는 당직이 있어서 퐁당퐁당 이었는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여전히 티브이를 틀면 혼란스러운 나라 안팎 소식이 앞다투어 보도된다.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망하지 않고 여전히 돌아가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 묵묵히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에는 무슨 글을 쓰던 작금의 이 상황에 대한 우려로 마무리가 돼 속상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나의 하루이고, 내 삶의 기록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은가? 나와 마주하는 이 시간이 좋다. 배 터지게 먹고 새벽 1시까지 글 쓸 수 있는 연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