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대선배인 u작가님께 마음을 내주기까지는 단 몇 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자 시절 문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먼발치에서 작가님을 뵙긴 했지만 작가님과 함께한 첫 데이트에서 입에 모터라도 단 듯 폭풍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일 게다. 2년 전 엄마와 함께 신문사에서 주최한 백일장에 나간적이 있다. u작가님은 그 신문사 주필님이다. 우리 모녀는 각자의 예명으로(기자란 자가 글을 이렇게 밖에 못 쓰냐는 지적을 받을까 봐^^;;;) 백일장에 응모했고, 싱그러운 5월 3.1 공원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글이 상을 탔다.
매일 기사 작성을 업으로 삼았지만 진짜 글이 쓰고 싶던 내게 u작가님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취미 삼아 페이스북에 올렸던 내 글에 "가영 씨 글은 참 재밌어. 계속 써봐요"라고 댓글을 달아주신 게 아닌가? 그 뒤로 난 문화 현장에서 u작가님을 보게 되면 얼굴 가득 생기가 돌아광대가 승천하곤 했다.
'어공' (어쩌다 공무원)이 된 후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민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가영 씨 많이 바쁘죠? 점심 먹을 시간은 있죠? u작가님께서 가영 씨랑 함께 밥 먹자고 하시던데..."
"정말요? 저야 너무 좋죠. 회사 근처에서 보면 괜찮아요"
마흔이 넘은 나와 50대인 민 작가님, 70대인 u작가님 저마다의 시대를 살아온 여자 셋이 모였지만 나이 따윈 전혀 문제 되지않았다. 여고생이라도 된 듯 까르르르 웃다가도 삶과죽음에 관한 묵직한 대화가 오갈 땐오랜 친구들이 슬픔을 함께 나눌 때처럼 금세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으니까. 대화가 농익을 무렵 난 최근에 생긴 고민을 털어놓았다.
"작가님 요즘 너무 바쁘기도 하지만 혹 저의 사생활이 담긴 글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봐 글을 못 쓰겠어요. 그래서 궁리 끝에 독후감을 쓰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죠. 어때요?"
"가영 씨 글은 꾸밈이 없어서 잘 읽혀. 작가로 등단한 사람들의 글은 정형화된 틀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한데 솔직하잖아. 계속 써봐. 내가 요즘 참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이슬아 작가라고.. 꼭 읽어봐. 어쩜 그렇게 꾸밈이 없는지, 무당인 증조할머니를 어쩜 그렇게유쾌하게재밌게 표현했는지 몰라.
이슬아 작가 글을 보면 꼭 가영 씨가 생각나!"
한 달 전 두 작가님과 함께 나눈 대화의 설렘을 가득 안고 서점에 갔다.
작가님께 그 말을 듣는 순간은 꼭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된 듯 가슴이 부풀어 올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