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 중 여운이 가장 오래가는 책이었다. 이 글이 발행될 쯤은 주말 당직을 하고 있겠지만 설 명절 연휴 마지막날을 아쉬워하며 식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최근 20년간 명절 연휴 내내 오롯이 쉬어본 게 처음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이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단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어머 벌써 오전 열시라니....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을 마저 읽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사는 내 마음에 스며들어 그간 내 인생에서 사라진 것들과 남아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가슴 언저리에 남아 내 몸 구석구석을 부유하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생각에 잠기니, 그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혔던 것이란 결론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푸딩이(몰티즈)와 산책을 하다가 불쑥불쑥 나의 지난날들을 떠올려본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냥 시댁에서 전이나 붙이고 집에 돌아와 티브이나 죽이며 지나쳐갔을 연휴였을 텐데 말이다.
총 15편으로 구성된 단편은 40대 남성이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젊은 날의 한 때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간다. 각 단편마다 중년이 된 주인공들이 겪는 불안과 혼돈, 우정과 사랑에 대한 고민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졌다.
흔히들 여자의 직감은 무시 못한 다고 말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이야말로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못 해도 어떠한 문제에 직면할 때 더 깊이 고뇌하고 방황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더 쓸쓸해지는 기분.
어쩌면 내가 40대 남편을 둔 여자여서 더 공감이 갔는지 모른다. 20~30대의 젊은 독자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시댁에서 돌아오니 친정에는(난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산다) 고스톱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임에 직접 참여하기 전 한 발짝 뒤에 물러서 거실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엄마는 쓰리 고를 외치기 직전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고 쓰리고에 피박, 광박까지 쏘이게 될 처지에 놓인 이쁜이 이모의 표정은 그 반대였다. 그리고 늘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독일이모 자리엔 이모 대신 이모 아들인 j가 엄마와 꼭 닮은 자매들과 나란히 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다. 보너스를 피를 뽑아 간신히 3점으로 승리를 맛본 그 미소 너머에는 왠지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는 것만 같은 쓸쓸함이 묻어난다.뒤에서 보기만 하다 서너 판 뒤엔나도 고스톱에 합류했다. 평소에는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백 원짜리를 오백 원만 따도 좋아 죽는 나인데 어쩐지 이날은 쌍피를 먹고도 돌아가신이모의 목소리가 자꾸만 맴돌아서 웃음이 나질 않았다.